110달러면 1주일만에 ‘하버드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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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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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격 영어강사’ 졸업증 위조 사이트서 직접 신청해보니

한 해외 검색 사이트에서 영어로 ‘위조 졸업증명서 평가’라고 입력하자 곧바로 여러 개의 사이트가 올라오며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중 한 곳이 시선을 끌었다. 졸업증명서 위조 리뷰 사이트였다. 이곳에서는 “인터넷에 있는 졸업증명서 위조 사이트의 90%가 ‘사기’여서 리뷰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안내문이 있다. 이 사이트는 품질, 서비스, 배송 속도, 가격, 신뢰도 등 여러 항목을 만들어놓고 점수를 매긴 뒤 A부터 F까지 졸업증명서 위조 사이트의 종합점수를 평가했다. “A사이트는 졸업증명서보다 성적증명서가 더 낫다”는 구체적인 평도 적혀 있었다. 이 리뷰 사이트에서 ‘괜찮다’고 평가한 한 졸업증명서 위조 사이트에 24일 직접 들어가 발급을 시도해 봤다.

○ 100∼200달러면 졸업증 성적표 발급

서울지방경찰청은 23일 미국에서 살인을 저질러 인터폴에 수배되거나 살인미수 혐의를 받아 추방된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인 갱단 출신 이모 씨(26) 등 2명의 학원강사를 붙잡았다. 재미교포와 미국 영주권자인 이들은 해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대학졸업증을 위조해 버젓이 한국에서 학원강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원하는 학위 선택하면 가짜 졸업증 ‘뚝딱’
“졸업증명서 가능하냐” 질문에 15 분도 안돼 “OK” e메일 회신
‘위조’ 평가 리뷰사이트도


미국 주요 대학의 졸업증과 성적증명서를 위조해준다는 한 졸업증 위조 사이트의 홈페이지. 국내에서 ‘허위 학력’으로 적발되는 대부분의 원어민 강사들이 이와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주요 대학의 졸업증과 성적증명서를 위조해준다는 한 졸업증 위조 사이트의 홈페이지. 국내에서 ‘허위 학력’으로 적발되는 대부분의 원어민 강사들이 이와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24일 이 씨가 의뢰한 것과 똑같은 경로로 위조 졸업증명서를 주문하는 과정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해외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미국 대학 졸업증명서 위조 사이트가 수십 개나 됐고 그 위조 사이트를 평가하는 ‘리뷰 사이트’까지 개설돼 있었다.

대부분의 해외 위조 사이트에서 대학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만드는 가격은 100∼200달러(약 11만∼22만 원)였다. 비싼 곳은 400달러(약 44만 원)를 넘었다. 위조하는 증명서의 종류도 다양해 대학졸업증명서는 물론이고 고교졸업증에 미국 출생증명서도 있었다. 리뷰 사이트에서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리뷰를 믿고 한 위조 사이트에 들어갔다. 주문하기에 앞서 몇 가지 궁금증을 이 사이트 운영자에게 e메일로 질문했다. 15분도 되지 않아 회신이 왔다. 실제 졸업증과 얼마나 비슷한지 묻자 그는 “학교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미국 예일대를 말하자 “예일대 졸업증은 라틴어로 쓰여 있으며 아리얼(arial) 글꼴을 쓴다”며 졸업증명서 사진을 보내줬다. 그는 마지막에 “예일은 몰라도 하버드는 진짜와 정말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 일주일 만에 예일대 졸업생

배송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이 사이트 운영자는 “매주 아시아 국가로 배송한다”며 “지난해에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에도 몇 번이나 무사히 배송했다”고 안심시켰다. 도착에 걸리는 시간은 제작 기간을 포함해 7∼10일. 200달러 정도면 일주일 만에 하버드대나 예일대 졸업자가 될 수 있다.

주문 과정 자체도 간단하다. 해당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고 학교 이름과 졸업연도, 전공, 학위에 표시할 이름 등을 기입하면 된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원하는 학위를 선택하고 구입하면 끝이다. 기자가 선택한 항목은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두 가지를 109.95달러(약 12만 원)에 파는 특별패키지 상품. 하버드대나 예일대 등 미국 대학은 모두 같은 가격이었다. 가짜 학위와 관련해 접촉한 모든 해외 웹 사이트는 “자신의 실제 졸업증명서를 분실했거나 집 거실에 걸어놓고 자랑하는 용도 등에 쓰기 위해 (위조 졸업증명서를) 판매한다”며 “불법적인 용도로 증명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선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조 졸업증명서’ 문제는 비단 학원강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직장인 사이에서도 허위 해외 학력이 만연해 있다. 최근 헤드헌팅업체인 엔터웨이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에서 의뢰받은 210건의 해외 학력 조회 중 9.5%가 허위 학력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대학 대부분이 최근 검증 과정이 까다로워져 이런 가짜 졸업증명서에 속지 않지만 어학원이나 기업 등은 여전히 별다른 검증 없이 믿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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