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경제 뒤흔든 전일저축은행 파산위기 현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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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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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5000만원만 보호’ 몰라
평생 모은 돈 다 맡겼다 ‘피눈물’

피해자 대부분 60세 이상
‘한도’ 넘겨 예금한 3573명 총 526억원 눈뜨고 떼일판
은행 측 명의분산 등 안알려…후순위채는 한푼도 못건질 듯


지난달 26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일상호저축은행에서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 원이 넘는 돈을 맡겼다가 일부를 못 받게 될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전주=장원재 기자
지난달 26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일상호저축은행에서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 원이 넘는 돈을 맡겼다가 일부를 못 받게 될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전주=장원재 기자
지난달 26일 오전 9시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일상호저축은행 1층. 예금을 맡겼다가 일부를 떼일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60세 이상 노인들로 상당수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이날은 지난해 말 영업이 정지된 전일상호저축은행이 스스로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는 마지막 시한이었다. 4월까지 어디서도 인수하지 않으면 전북 최대의 저축은행인 전일상호저축은행은 청산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금융회사가 파산했을 때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1인당 5000만 원까지이지만 전일상호저축은행에 이 한도를 넘겨 맡긴 사람은 3573명이나 된다.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해 날릴 위기에 처한 돈은 모두 526억 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북 경제를 충격에 빠뜨린 전일상호저축은행 현장을 찾아가 봤다.

○ 피해자 대부분 고령층, 저축은행이 고액예금 유도


전일상호저축은행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교육수준이 낮아 예금자보호법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장모 씨(62·여)는 “초등학교도 못 나와 예금자보호 한도가 있다는 걸 몰랐다”며 “나중에 아파트라도 얻어 아이들과 살 생각으로 악착같이 모은 돈을 날리게 생겼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목욕탕 청소, 빨래 등을 하며 25년 동안 9500만 원을 모았고 이 돈을 몽땅 전일상호저축은행에 맡겼다.

장 씨가 예금보호 한도에 맞춰 여러 저축은행에 나눠 돈을 맡겼거나 예금을 가족들의 명의로 분산했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금을 유치하기에 바쁜 금융회사들은 이 같은 사실을 고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 저축은행 직원들은 예금을 안내할 때 ‘정부(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한다’고만 했을 뿐 얼마까지 보호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전단지에도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한다’고만 썼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정부가 제대로 감독을 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예금보호 기준과 세금우대 기준이 다른 것도 혼선을 부추겼다. 전일상호저축은행은 노인들에게 세금을 면제하는 생계형 저축과 세금우대 예금상품을 판매하면서 1인당 가입한도(6000만 원, 2008년까지는 9000만 원)까지 가입하도록 유도했다. 김모 씨(94)는 “가입 당시 9000만 원까지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해 문중 땅 개발자금 8300만 원을 모두 넣었다. 정부에서 세금을 우대하는 금액만큼 보장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 후순위채 “한 푼도 못 건질 판”

예금자들은 그나마 5000만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지만 후순위채를 산 이들은 한 푼도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후순위채는 금리가 높은 대신 파산하면 상환 순위가 뒤로 밀리는 채권이다. 전일상호저축은행은 후순위채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183명에게 162억 원어치를 팔았다.

한 피해자는 “평생 모은 돈 6억 원으로 후순위채를 샀다가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며 “은행 직원이 원금은 보장된다고 거짓말을 해 돈을 모두 맡겼는데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그동안 저축은행이 부실해지면 우량 저축은행이 인수해 피해를 줄이도록 했다. 하지만 전일상호저축은행은 부실 규모가 커 아직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이 없다. 인수가 무산되고 청산 절차에 들어가면 5000만 원 넘게 맡긴 예금자들은 초과 금액의 일부만 받게 된다.

금융 당국은 문제가 생기자 뒤늦게 통장과 홍보물에 예금보호 한도가 5000만 원이라는 사실을 명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피해를 줄이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노인 등 금융지식이 부족한 계층에 대해서는 금융회사들이 돈을 받기 전에 예금자보호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분산 예치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주=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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