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 40년 된 분유대장균 검출 기준 1년전 ‘조용히’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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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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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출 불허’→‘일부 검출 허용’ 규정 완화 안알려
업체 적발 사실도 제대로 안알려… 봐주기 논란
검역원 “국제기준 맞춘것… 절차대로 개정-공지”

정부가 영유아용 분유의 대장균군 검출 기준을 40년 만에 완화하고서도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영유아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중요한 사안을 공청회 등을 거치지 않고 결정한 데다 기준 변경 사실이나 그 이유를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리지 않아 분유 업체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 ‘불검출 원칙’ 40년 만에 바꿔

분유를 비롯해 축산물과 그 가공품에 대한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2008년 12월 30일 검역원장 명의로 ‘축산물의 가공기준 및 성분 규격’을 개정해 고시했다. 개정 이전에는 분유에서 대장균군이 단 1마리도 검출돼서는 안 됐지만 개정 이후에는 일부 검출을 허용했다. 국내에서는 1968년 ‘유(乳) 등의 성분규격에 관한 규정’이 도입된 이후 줄곧 ‘대장균군 불검출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당시 개정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을 완화한 셈이었다.

대장균군은 식품의 일반적인 위생상태를 알 수 있는 ‘지표 세균’으로, 대장균군이 검출되면 병원성 바이러스군이나 세균군, 기생충군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장균이 일정 수 이상 검출되면 해당 식품을 회수해 폐기 처분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세계적으로 분유를 생산하는 나라들마다 검출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미국과 호주는 대장균군의 일부 검출을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연합(EU)은 대장균군 검출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요 국가 가운데 최근 기준을 완화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 검역원, 기준 완화 제대로 안 알려

검역원은 축산물가공처리법령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축산물위생심의위원회를 거쳐 개정안을 확정 고시했다. 그러나 분유의 대장균군 검출 기준 완화는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인데도 공청회나 기자회견, 보도자료 배포 등 적극적인 공지 노력을 펼치지 않아 ‘사실상 은폐’와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기준을 완화한 뒤 초과 제품이 나오자 이를 숨긴 의혹도 짙다. 지난해 11월 말 A사의 분유를 먹고 아기가 배탈이 났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검역원은 같은 날짜 제품을 조사한 결과 대장균군이 기준을 초과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준을 완화한 뒤 처음 나온 초과 사례였다. 예전에는 이럴 경우 영유아들이 먹는다는 점을 고려해 검역원은 언론에 즉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홈페이지 첫 화면에 관련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검역원은 이번 사건을 지난해 12월 14일 홈페이지에 공지하면서 4단계를 거쳐야 겨우 찾아볼 수 있도록 해 놨다. 보도자료도 내지 않았다. A사 제품이 기준을 초과했다는 사실, 나아가 기준 완화 자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 검역원 “국제 기준과 동등하게”

분유업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A회사 제품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했는데 검역원이 이 기준을 완화시켜 줬는데도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자 책임 추궁이 두려워 관련 사실을 숨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역원 관계자는 “한국의 분유 대장균군 검출 기준이 유독 엄격하다”며 “국제 기준과 동등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규정된 절차를 거쳐 개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대장균군 검출 사실도 홈페이지 어디에 공지하라는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적당한 공간’에 공지만 하면 된다”고 해명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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