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학교 공부스타/대구 경화여고 2학년 이수민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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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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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탱자’ 문제아 → 공부벌레 변신… 두 번 유명인사 됐어요

《“수민아, 이번 주엔 전교 150등에서 60등으로 오른 남학생 얘기가 실렸네. 이놈아도 엄청 독한 놈이네. 니도 이렇게 했다 아이가. 니도 함 나가 봐라.”

“오빠야, 내도 진짜 신문에 나갈 수 있을까.”

11월 25일 오전. 동아일보 교육법인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 여고생이 정겨운 대구 사투리로 ‘우리학교 공부스타’에 소개되고 싶다고 했다. 오빠의 권유로 내린 결정이란다.

학생은 뒤로부터 등수를 세는 것이 더 빨랐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머리를 감는 순간조차 영어단어를 외우는’ 요즘까지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털어놨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434명 중 402등이었던 학생은 중학교 3학년 땐 전교 학생회장에 선출되더니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영어시험에선 100점을 받았다. 현재 성적은 국어 영어 수학 모두 전교 30등대. 대구 경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이수민 양(17)의 이야기다.》

[before] 내 이름은 ‘문제아’

“학교 가기 전 30분은 ‘고데기’로 머리를 만졌어요.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가 ‘the way you are’를 노래할 때 했던 헤어스타일인데요. 뒤쪽 머리를 제대로 띄우는 게 핵심이에요.”

이 양이 중학교 1학년 땐 교복 재킷과 조끼는 몸통에 꽉 맞게 줄이고 치마는 아랫단을 길게 늘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런 차림으로 이 양은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과 몰려다녔다. 어머니에겐 학원에 간다고 말하고는 친구들과 PC방, 극장, 노래방에 드나들었다. 두세 명이 모여 길에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났다.

“중1 기말고사 하루 전날이었어요. 친구들하고 돌려가며 쓰는 교환일기를 알록달록하게 꾸미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방에 들어오셨어요. 공부하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크게 혼을 내셨어요. 이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기 시작하셨고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점심시간 복도에서 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있었다. 이 양과 친구들은 “사귀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한 선생님이 이 양과 친구들의 귀를 잡아 뺨을 때렸다. “느그들은 학교의 문제다, 문제!”라던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뇌리에 박혔다.

[change] 공부하는 애가 ‘불쌍하다’ 생각했던 그녀가…

“선생님, 저 지금이라도 공부하면 잘할 수 있을까요?”

“네가 얼마나 놀기 좋아하는지 내가 더 잘 아는데, 네가 이렇게 말할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할 수 있을 거다.”

중학교 2학년 때 이 양은 담임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침 같은 반엔 상위권 학생들이 많았기에, 자극을 받은 이 양은 예전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하지만 공부에 관해선 반 친구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 양의 학업수준은 초등 고학년에 머물러 있었다. 초등학교에선 수학에서 미지수가 네모 칸으로 표기됐지만, 중학교 들어 이것이 갑자기 ‘x’로 바뀌자 당황스러웠을 정도였으니….

“한창 놀 때는 공부하는 애들 보면서 ‘남들 놀 때 수학문제 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불쌍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때 ‘탱자탱자’ 놀았던 나 자신이 더 불쌍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상위권이었던 친구 이경민 양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다. 작은 수첩(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일단 적었다. ‘군장’ ‘체제’ ‘중엽’ 등에 동그라미를 치고 ‘이게 뭔데?’라고 메모를 남기면 경민 양이 답을 적어 이 양에게 돌려줬다. 쉬는 시간엔 교무실로 향했다. 이 양의 질문 공세에 주요 과목 선생님들이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공부가 정말 재미있을 때는 머리 감을 때도 머릿속으로 영어단어를 외웠어요. 학교에서는 유명인사가 됐죠. 모르던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주위의 칭찬도 정말 뿌듯했어요(웃음).”

중학교 3학년 땐 학생회장에 선출됐다. 복도에서 만난 2학년 후배들이 “오늘 담임선생님이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하셨다”고 전했다. 그 반 선생님은 이 양에게 ‘문제아’라고 말했던 선생님이었다.

[after] 초등학교 5학년 수학교과서를 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노려봐야 해요. 우리 반에 수업시간 땐 자고, 몇십만 원 하는 인터넷강의 결제해서 밤에 듣는 애가 있는데 성적은 안 좋아요.”

과거 ‘전교 수다왕’으로 불렸던 이 양의 수업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쉬는 시간 5분을 활용한 ‘자투리 복습’과 집에 가서 매일 하루 수업시간표를 그대로 재현해 문제를 푸는 ‘매일 복습’ 원칙을 지켰다. 쉬는 시간 5분은 교과서 위주로 선생님이 강조한 부분을 짚었다. 집에선 그날 배운 범위의 문제를 풀고 요점노트를 정리했다. 처음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입헌군주제’ ‘지방자치단체’ ‘지속가능한 개발’ 등 모르는 단어를 적었던 노트는 다섯 권이 넘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초등 5학년 수학교과서부터 공부했다. 남들이 선행 학습할 때 초등학교 공부를 다시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 양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면 그건 모르는 것”이라면서 “영영 모르는 것으로 남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애초의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양은 아버지에게 ‘아빠, 나 정말 다음엔 잘할게. 한 번만 더 믿어줘’라고 문자를 보낸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딸을 믿는다. 열심히 해다오’라는 아버지의 문자가 큰 힘이 된다.

“이번에 제가 ‘우리학교 공부스타’에 나오면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면서 담배를 다시 끊으시라고 말씀드릴 건데요. 잘되겠지요(웃음)?”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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