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희망의 빛’ 전하는 특별한 과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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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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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3학년 김혜영 씨의 시각장애 아동 방과후학습 돕기
받아쓰기-띄어 읽기
고개 푹 숙이던 경석이
8개월만에 비밀 얘기까지
서울시 ‘디딤돌 사업’ 성과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서울맹학교 6학년 이경석 군(오른쪽)과 고려대 보건과학대 임상병리학과 3학년 김혜영 씨가 국어 보충 과외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일반 문제집을, 시각장애 1급인 이 군은 점자로 찍힌 문제집을 각각 이용한다. 변영욱 기자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서울맹학교 6학년 이경석 군(오른쪽)과 고려대 보건과학대 임상병리학과 3학년 김혜영 씨가 국어 보충 과외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일반 문제집을, 시각장애 1급인 이 군은 점자로 찍힌 문제집을 각각 이용한다. 변영욱 기자
실눈을 가늘게 뜬 키 작은 아이가 손으로 벽을 더듬으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두꺼운 점자책이, 다른 한 손에는 시각장애인용 점자 단말기가 각각 들려 있었다. 25일 오후 서울맹학교 6학년 이경석 군(12·시각장애 1급)이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특별 과외’를 받으러 오는 길이었다. 배시시 웃으며 “선생님”을 부르는 아이에게 미리 기다리고 있던 김혜영 씨(22·여)가 손을 내밀어 책상으로 이끌었다.

○점자단말기를 수업 교재로

“수업 시작 전에 받아쓰기부터 해볼까” “아, 어려운데….” 한글 받침 맞춤법을 어려워한다는 경석이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단말기 ‘한소네’를 켰다. 경석이에게는 노트북에 해당하는 수업 교재다. 키보드 누르듯 10여 개 버튼을 손으로 누르자 기계 가운데 작은 액정에 글씨가 입력됐다. 액정을 흘끗 보고는 김 씨가 “‘닳은’을 이렇게 써? ㄹ, ㅎ이 둘 다 받침으로 들어가야지”라고 지적했다. 비장애인인 김 씨가 경석이를 가르치는 방법이다. 고려대 보건과학대 임상병리학과 3학년 학생인 김 씨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디딤돌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4월부터 경석이의 과외를 맡아오고 있다. 디딤돌 사업은 시민 누구나 각자 가진 능력 및 자산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획된 민간 연계 복지 프로그램이다.

태어난 지 한 살이 되던 해 병원 치료 부작용으로 시각장애를 앓게 된 경석이는 평소 책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아 국어에 유독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느 평범한 학생들처럼 사교육을 받을 형편은 아니었다. 일반 학원을 무작정 찾아갈 수도 없었고, 개인 과외 선생님을 구하자니 가격이 갑절 이상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어머니가 일일이 점자책을 손으로 타이핑해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학교 공부와 인생 수업을 한꺼번에

김 씨는 국어 전공자도, 특수 교육 경험자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요즘 경석이에게는 점점 뒤처지는 학교 수업을 도와주는 선생님이자, 첫번째 ‘인생 친구’다. 과외를 시작한 뒤 경석이는 성적뿐 아니라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만나는 비장애인 선생님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말도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아이가 요즘은 엄마 몰래 오락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도움만 받다보니 응석을 잘 부리던 아이지만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호랑이 선생님 덕에 예의도 늘었다.

받아쓰기 검사를 마친 김 씨와 경석이는 각자 책을 폈다. 김 씨는 알록달록한 문제집, 경석이는 새하얀 점자책이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점자로 타이핑된 경석이의 책은 3배 이상 두껍다. 경석이가 점자를 손으로 더듬어 소리 내 읽자 김 씨가 잘못된 발음과 띄어 읽기를 교정해줬다. 점자를 전혀 모르는 김 씨도 과외 8개월째인 요즘은 감으로 경석이에게 읽을 위치를 짚어준다.

“시각장애는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국내에 전문 선생님이 부족해요. 평범한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하기까지 우려도 많았는데, 아이들 성적뿐 아니라 태도까지 좋아지는 걸 보니 성공인 것 같네요.”(서소희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은 서울시와 현대자동차 등의 지원에 힘입어 김 씨 등 대학생 15명이 진행하는 방과 후 학습 지도 사업을 내년에도 운영한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는 수시로 모집한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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