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역사 부정한 규명위 책임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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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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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김동인 친일결정 무효소송 진행 중인 엄상익 변호사
“조사관 경력-사상적 배경 정보공개 청구로 밝혀내야”

엄상익 변호사(55·사진)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 한쪽에는 1920, 30년대 국내 신문과 잡지 복사본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삼양사 창업자 김연수, 소설가 김동인의 친일 결정 무효 소송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만났던 규명위 관계자가 ‘변호사가 역사에 대해서 뭘 아느냐’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그때부터 관련 논문은 물론 1차 사료까지 샅샅이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엄 변호사는 27일 규명위가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인의 명단을 공개한 것을 두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역사의 심판관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운동사관, 민중사관에 매몰된 위원회가 ‘지식인이 항일투쟁을 안 했으면 기본적으로 친일파이자 민족배반자’라는 시각에서 ‘억울한 친일파’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는 규명위의 역사관을 바라보는 뒤틀린 시각의 문제점을 반복해서 지적했다. “이번 명단에 오른 인사들 가운데는 정부가 없었던 당시 우리 민족의 사실상의 정부 역할을 맡아 민족을 지키고 대변한 분들이 많습니다. 인촌 김성수와 김연수 형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식민통치하의 인도에서 간디처럼 ‘민족의 역량 강화와 체제 내 저항’이라는 힘든 길을 걸은 분입니다.” 이들이 당시 우리 민족에 세운 막대한 공을 감안한다면 일제의 강요나 조작 가능성이 높은 친일매체 기고문이나 총독부가 급조한 관변단체에 구체적 행위 없이 이름을 올린 것은 규명위의 주장대로 친일 증거라기보다는 일제에 의해 두들겨 맞은 ‘멍’이라고 보는 것이 균형 잡힌 시각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별법의 규정대로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해 ‘팩트(사실)’만을 조사했다는 규명위의 발표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功)과 과(過)를 함께 판단하면 친일파라고 볼 수 없으니 다른 증언이나 기록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친일매체나 총독부 관보 기록에만 의지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명단에 수록된 인사의 후손이나 유족이 ‘친일파의 후예’라는 ‘원죄 의식’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는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분노마저 느낀다고도 했다.

“1005인 명단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정치,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에서 ‘근대’를 배워 대한민국 건국에 초석을 놓은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테러입니다. 테러의 피해자인 유족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엄 변호사는 “규명위 위원들이 사무처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면 사무처 직원들이 노골적으로 반발하며 사실상 ‘파업’을 벌였다는 법정 증언을 해주겠다는 규명위 위원도 있다”며 “조만간 재판부에 증인 신청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엄 변호사는 “4년 반 동안 대한민국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작업에 수백억 원의 예산을 사용한 규명위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특히 조사를 실질적으로 관장한 규명위 조사관들의 경력과 사상적 배경을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밝혀내는 작업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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