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신발 잃어버려 헬기 타지 말라 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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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산림청 헬기 추락
빈소에 애도 발길 이어져

24일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2층. 23일 창공에서 스러진 산림청 영암산림항공관리소 소속 고 박용규 정조종사(52), 이중배 부조종사(46), 이용상 부조종사(44)의 합동 빈소가 차려져 있었다. 빈소 입구에는 숨진 조종사 3명의 순직을 애도하는 조화 20여 개가 세워져 있었고 조문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박 조종사는 1993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해 13년 동안 산불진화 헬기를 조종한 베테랑이다. 군 경력을 포함해 모두 5099시간 동안 하늘에서 생활했다. 그는 사고 당일 아침 전북 전주의 자택에서 부인(51)과 아들(22)에게 “신발을 잃어먹는 기분 나쁜 꿈을 꿔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이에 부인은 “오늘은 절대 헬기 조종간을 잡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대학생 딸(21)도 기숙사에서 거울을 보던 중 거울이 깨져 “아빠, 오늘 헬기 조종하지 마세요”라고 휴대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잇따른 징크스에도 부조종사 교육 첫날을 맞아 강한 책임감으로 헬기를 타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조종사 꿈을 위해 교육에 처음 참여했다 변을 당한 이중배, 이용상 부조종사는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운항을 준비했다. 이중배 부조종사는 2006년 육군 소령으로 군복을 벗은 이후 4317시간 동안 비행을 했다. 이용상 부조종사도 같은 해 해군 소령으로 예편해 3348시간 동안 하늘을 벗 삼았다. 고인들은 2년 전부터 함께 산림청에 몸을 담아 화재 현장을 누볐다. 두 자녀를 둔 것도 비슷했다. 이들은 헬기 조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정조종사 훈련에 참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비행 직전 남긴 메모에는 ‘조종사 건강기록부. 23일 수면·피로·정서·투약, 이상 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들의 달력에는 빈 공간이 없을 만큼 훈련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중배 부조종사의 부인은 사고 직전 남편에게 휴대전화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족들과 산림청은 장례를 산림청장으로 지내고 국립묘지 안장, 국가유공자 지정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영암산림항공관리소의 한 관계자는 “고인들은 신종 플루 여파로 헌혈이 감소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란히 헌혈에 동참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며 “운항 직전 사무실에서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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