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튀면 끌어 내리려만 하나 외고 없애도 私교육 안줄것”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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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졸업생들이 말하는 ‘외고 논란’

김진표 前부총리 딸과 동창 그분 폐지론 주장땐 황당
소수사례 확대 해석 문제…정치권은 색안경 끼고 봐

“외국어는 자기 주(主) 능력을 뒷받침해 주는 도구일 뿐이다. 외국어고는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외국어라는 무기도 갖춰주는 교육기관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를 특성화고로 바꾸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초안을 내놓은 뒤 논란이 한창이다. 사회에 진출한 외고 졸업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외고 졸업생들은 “외고 졸업생들 또한 시스템의 피해자다. 이 문제는 마녀사냥 식으로 외고 하나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원외고를 졸업한 A 씨(31·회계사)는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 딸이랑 고교 동창이다. 대학도 같은 곳을 나왔다. 김 부총리 같은 분이 지난 정부 당시 외고 폐지를 들고 나왔을 때부터 황당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왜 튀면 없애려고만 드는지 모르겠다. 교육환경이 떨어지는 학교가 있다면 그 학교를 끌어올릴 생각을 해야지 ‘너희만 교육환경이 좋으니 같이 내려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외고 문제가 나올 때마다 외고 졸업생이 어문계열에 거의 진학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따라 나온다. 한영외고를 졸업한 B 씨(30·여·해운회사 직원)는 “외고 졸업했으니 대학 진학할 때 어문계열로 진학해야 한다는 건 국문학과 갈 사람만 국어를 배우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며 “게다가 중3 때 자기 미래를 결정지으라는 건 직업 선택의 자유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고를 없애면 사교육 수요가 줄 것이라는 전망에도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과천외고를 졸업한 C 씨(25·여·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외고를 없애면 외고 교육 수요가 줄 수는 있겠지만 사교육에서는 그만큼 다른 수요를 만들 것”이라며 “내가 다닌 학원도 예전에는 민족사관고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경기 지역에 외고가 늘면서 방향을 틀어 또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외고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학원’으로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화외고를 졸업한 D 씨(27·여·정보통신회사 직원)는 “고3 2학기 때 실기 평가 때문에 수학능력시험을 한 달 앞두고 중국어 연극을 준비했다. 또 제2외국어 수업이 일반계고처럼 느슨하지 않다”고 전했다. D 씨는 “오히려 프랑스어나 독일어뿐 아니라 아랍어, 베트남어, 태국어를 구사하는 학생도 길러내도록 외국어 커리큘럼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일외고 출신 E 씨(33·은행원)도 “외고 출신 중에도 자기 꿈을 찾아 문예창작과 같은 곳으로 진학하는 친구들이 있다. 모두가 명문대만 좇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 외고에 들어온 학생이면 다른 고교에 갔어도 비슷한 수준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우려도 뒤따랐다. 서울외고를 졸업한 F 씨(26·보험회사 직원)는 “언론에서 외고를 자꾸 비뚤어진 시각으로 그린다. 소수 사례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 문제”라며 “정치권도 색안경을 끼고 외고를 바라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외고 졸업생 50명에게 “다시 태어나도 외고에 갈 것이냐”고 물었다. 84%(42명)가 아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외고를 추천하겠다는 응답 비율도 같았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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