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동서남북/옛 전남도청 별관 보존 결정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 입력 2009년 9월 24일 0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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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광주 시민들에게 옛 전남도청은 특별한 곳이다. 그해 5월 27일 새벽 시민들이 진압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이곳을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부르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런 뜻을 받들어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5·13특별담화를 통해 5·18묘역과 함께 이곳을 대표적인 5·18기념사업 대상지로 선정했고, 결국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옮아가는 계기가 됐다.

2002년 대선 승리의 기반을 광주에서 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14일 광주공원 유세에서 “예향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만드는 마당에 광주도 언제까지 5·18의 상처만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으냐는 차원에서 미래지향적 개발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문화수도’ 공약의 중심시설이 바로 옛 전남도청 터에 들어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새삼 그간의 경위를 나열하는 것은 옛 전남도청 터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건 ‘나눔과 희생’이라는 5·18정신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기 위함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이뤄진 문화전당 설계안 국제공모에서 재미건축가 우규승 씨의 ‘빛의 숲(Forest of light)’이 당선작으로 결정된 것은 2005년 12월 2일. 이 설계안에 따라 ‘당연히’ 철거될 예정이었던 별관을 ‘원형 보존’하라고 요구하는 5월 단체의 천막농성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 24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을 훨씬 넘긴 2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당초 설계안을 철회하고 어떤 형태로든 별관을 보존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문화부로서는 ‘원형 보존’ 여론을 등에 업은 ‘10인 대책위’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으리라고 관측되지만, 결국 광주사람 스스로 새로운 멍에를 만들어 썼다는 탄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원 설계안 존중’을 주장했던 한 인사는 “이번 설계 변경으로 사업비 150억 원이 늘어나고 완공 시점도 1년가량 늦춰질 것”이라며 “무엇보다 국제공모의 틀조차 발붙이기 어려운 ‘광주의 무원칙’이 답답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권 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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