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도 부족해 35억 ‘투쟁채권’

  • 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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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불법파업으로 70억 손배 위기 몰리자 조합원에 7월부터 발행
파업 → 손해배상 → 기금부족 → 채권발행 → 파업 ‘악순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코레일(한국철도공사) 노조가 다음 달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한 가운데 최근 조합원을 대상으로 ‘투쟁채권’ 발행 형식으로 35억 원(추정)을 걷은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코레일 노조는 이날 “과거의 파업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따른 조합비 압류, 하반기 투쟁 대비 등의 이유로 7월 말부터 투쟁채권을 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발행한 채권은 10만 원, 20만 원 등 2종. 사측과 노동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판매 수입이 35억여 원에 이르며 전체 조합원 2만4000여 명 가운데 2만여 명이 구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채권은 일반 채권과 달리 증서와 금리가 없으며 은행 이자는 전액 조합비로 귀속돼 명목만 채권인 셈.

노조가 채권을 발행한 가장 큰 이유는 2006년 3월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비용을 조합비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는 해고자 복직, KTX 여승무원 직접 고용 등의 문제로 4일간 전면 파업을 벌였으며 사측은 영업 손실 등의 이유로 150억여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당시 파업은 중앙노동위 직권중재를 불복한 불법 파업이었다. 서울고법은 2심에서 노조 측에 69억8700여만 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법적으로 노조의 채권 발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채권 발행 그 자체보다는 불법 파업→손해배상→조합비 차압→투쟁기금 부족→채권 발행→파업→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민주노총식 노동운동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이다. 노조 측은 채권을 발행하면서 “노조는 최근 하반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투쟁기금(채권)은 조합비 압류에 맞서 철도 노동자의 공세적 대응을 준비하기 위한 반격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조합원 A 씨는 “연간 무려 110억 원에 이르는 조합비가 조합원을 위해 쓰이지 않고 절반 이상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나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법 파업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고, 이 때문에 투쟁기금이 모자라 채권을 발행하고, 이렇게 걷은 돈으로 또다시 파업을 벌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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