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빰친 서울 대치동 ‘명품 자전거’ 10대 절도범들 수법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코멘트
정보조-실행조-판매조 절묘한 합동작전

지난달 23일 오후 1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기배관실. 작업을 하던 김모 씨(41)가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문을 열었다. 중학교 자퇴생 임모 군(15)이 벽돌로 자전거 자물쇠를 부수고 있었다.

훔친 자전거가 아니냐는 김 씨의 추궁에 임 군은 휴대전화를 꺼내 112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 경찰서죠? 어떤 아저씨가 자꾸 제 자전거에 시비를 걸어요. 좀 와주세요.”

임 군은 출동한 경찰에게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통해 자전거를 샀는데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 군은 경찰이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구매내용을 보자고 하자 당황했다.

대치동 자전거 절도조직 수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임 군의 자백으로 명품 자전거를 함께 털어온 중고교생 10명이 줄줄이 소환됐다. 10대들의 범행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도수법은 조직적이고 지능적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자전거 절도는 정보제공조와 실행조, 판매조의 합동작업으로 이뤄진다. 우선 정보제공조가 명품 자전거의 위치와 가격대, 잠금방식 등의 정보를 수집해 건당 1만 원을 받고 실행조에 넘긴다. 실행조가 지목된 자전거를 훔쳐오면 판매조가 인터넷 중고매매 사이트에 매물로 올린다. 수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10만 원대에 내놓기 때문에 훔친 자전거는 두세 시간 만에 대부분 팔린다.

이들에게 자전거 거치대에 묶이지 않은 채 서 있는 자전거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 한 명이 잠긴 쪽 바퀴를 들면 다른 한 명이 나머지 바퀴를 태연하게 끌고간다. 이외에도 ‘페달 돌리기’, ‘부싯돌 치기’, ‘덮씌우기’ 등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능숙한 자전거 도둑들도 철통 자물쇠로 잠긴 자전거는 애초에 훔치는 걸 포기한다고 했다. 이들이 밝힌 ‘철통 3종’은 오토바이 잠금장치로 주로 쓰이는 ‘순대형’, 철 소재로 돼 네 번에 걸쳐 접히는 ‘4관절’과 거치대와 자전거를 강철로 연결해주는 ‘U자형’ 자물쇠.

검거된 ‘자전거 도둑’ 10명은 강남 중산층 가정의 중고교생들이었다. 아버지가 강남에서 안경점을 하는 임 군은 뉴질랜드로 조기유학까지 다녀왔다. 서울수서경찰서 대치지구대는 10일 절도와 갈취 혐의로 임 군 등 9명을 형사입건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