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에콜로지카’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5분


◇에콜로지카/앙드레 고르/생각의 나무

자본주의를 던져버려라

어떤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우물을 팠다. 덕분에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꽤 나아졌다. 누구나 물을 대가 없이 길어다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마을의 경제 수준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누구도 물건을 사고 팔지 않았기에 국민총생산(GNP) 통계에 잡히지 않는 탓이다.

어느 사업가가 우물을 파서 물을 주민들에게 팔았다면 어떨까? 이 경우는 국민총생산이 늘어난다. 사업가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물을 공짜로 길어 쓸 때보다 돈 주고 물을 사야 할 때가 더 살기 좋다고 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사상가 앙드레 고르가 자본주의의 맹점을 지적하기 위해 드는 예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통계의 괴상함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공유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이런 프로그램은 누구나 마음껏 쓸 수 있다.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닳거나 없어지지도 않는다. 공짜를 뜻하는 영어 단어 ‘free’는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짜가 늘어나면 경제학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음반 회사는 수입이 없어 망해간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은 골칫거리가 된다. 벌이가 없으므로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결국에는 나라살림마저도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무료 서비스가 늘고 있다. 그럴수록 일자리는 점점 줄고 회사의 이익 폭도 작아져 간다. 한편 석유 같은 자원들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경제는 온통 빨간불 투성이다. 위기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앙드레 고르는 자본주의를 던져버려야만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사람들이 아끼고 절약만 해서는 경제가 나아질 리 없다. 자본주의 경제는 소비가 늘어나야만 성장한다. 기업은 사람들이 이미 가진 것에 싫증을 내고 새 제품을 사도록 끊임없이 부추긴다. 결과는 어떨까. 더 많은 상품을 만드느라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짓이겨진다.

앙드레 고르는 자본주의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처럼 엄청난 소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풍족하게 쓰는 세상이 되면, 우리는 좀 더 느긋하게 살까? 사랑 넘치는 인간관계를 맺게 될까?”

예전 사람들은 지금같이 아득바득 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루에 최대한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따지지 않았다. 하루 생활비 2.5 마르크를 벌려면 얼마나 일해야 할지 물었을 뿐이다.” 스스로 만족하고 자제할 줄 알았다는 뜻이다.

경제는 성장 자체가 목적이다. 생산이 활발하고 거래가 더 많이 이루어질수록 경제에는 좋다. 그래서 낭비는 미덕이 되었으며, ‘소비촉진’을 외치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활의 ‘충분함’에 대한 기준이 없다. 무조건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칠 뿐이다. 그럴수록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더욱더 망가져 간다. 이러한 비극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에콜로지카(Ecologica)’, 즉 정치적 생태주의를 바로세우는 길뿐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을 최소로 해서 최대한 적게 일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다.

적게 버는 대신, 자기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는 ‘다운시프터(downshifter)’를 별스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공유와 나눔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터넷 문화는 새로운 경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은 환경문제를 결코 해결해주지 못한다. 과학기술은 생산에 이바지하고 자연에서 더욱 많은 것을 ‘무리 없이’ 뽑아낼 때만 대접받는 법이다. 이래서는 환경과 삶이 망가지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우리에게는 소비를 줄이고 삶의 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멈출 수 있는 용기는 무작정 달리는 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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