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감사-무더기 자료요청 제동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헌재 “정부의 지자체 업무 포괄감사는 위헌”

“2006년 서울시 합동감사 정부, 지방자치권 침해”
행안부 “법 한도내서 실시”

정부가 지방자치단체 사무에 대해 포괄적 감사를 하는 것이 28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선고받음에 따라 앞으로 정부의 지자체 감사 관행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종종 정치적인 의도로 이뤄지는 특정 지자체에 대한 ‘표적 감사’나 지자체 자치사무에 대한 무작위적인 자료 요청 관행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이날 헌재의 위헌 결정 선고가 나자 “무분별한 감사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분쟁을 방지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앞으로 지자체에 감사 자료를 요구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는 태도를 보였다.

서울시와 행안부의 대립에서 촉발돼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의 발단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행정자치부(행안부의 전신)는 그해 9월에 서울시에 대한 정부합동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당시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이던 이명박 서울시장을 겨냥한 ‘표적 감사’ 논란이 일었다. 이 시장의 야심작인 청계천 복원사업이 감사 대상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한나라당은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합동감사를 추진하는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흠집내기 의도가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를 지원해야 할 행자부가 오히려 지자체를 옥죈다”며 ‘행자부 무용론’을 제기했다.

행자부는 청계천 사업을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지만 이 시장이 물러난 뒤인 9월에 감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때 서울시와 행자부는 다시 한번 날카롭게 대립했다. 서울시는 “2005년 감사원으로부터 종합감사를 받은 만큼 감사를 철회해 달라. 그게 안 된다면 국정감사 등이 겹치는 만큼 감사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행자부는 “원칙대로 하겠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서울시는 “정부의 지자체 자치사무에 대한 포괄적인 감사는 지방자치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한편 감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자 행자부는 그해 12월 서울시 감사관과 감사과장, 감사팀장 등 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것으로 맞섰다. 행자부는 2007년 12월 고발을 취하했다.

이 같은 논란은 결국 이번 헌재 결정으로 완전히 종식됐다. 정부로서는 앞으로 지방자치법 171조(옛 지방자치법 158조)에 규정된 대로 자치사무에 법령 위반 사항이 있거나, 법령 위반이 뚜렷하게 의심되는 경우에만 지자체의 자치사무에 감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의 위임사무에 대해 정부가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하지만 지자체 사무는 이미 지방의회나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만큼 법령 위반 사항이 있을 때만 정부가 감사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감사를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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