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왜 사람들은 불편한 은제식기를 좋아할까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2분


중국 귀족들은 여자아이들의 발을 꽁꽁 동여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인의 발 크기는 어른 손바닥 절반을 넘지 않았다. 당연히 정상적인 생활은 어려웠다. 발은 불구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전족(纏足)을 하지 않으면 좋은 집안에 시집가기 어려웠다.

이상한 풍습은 서양에도 있었다. 코르셋은 여자의 허리를 세게 조이는 옷이다. 이런 복장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여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졸도하곤 했다. 현대인들의 패션 감각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다. 마르고 팔다리 가느다란 모델들이 인기를 끄는 요즘이다. 그네들은 강한 팔뚝과 육덕진 몸을 가진 여인네보다 생활력이 강할 리 없다. 전족, 코르셋, 여린 몸매. 자기 몸도 추스리기 어려울 듯싶은 모양새들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한계급론’은 의문에 답을 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베블런 효과’로 유명한 경제학자 톨스타인 베블런(1857∼1929)이다. 베블런 효과란 ‘과시적 소비’를 뜻하는 말이다. 은수저가 철수저보다 쓰기 편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은제식기를 좋아한다. 왜 그럴까? 은수저가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사는 축에 드는지 아닌지는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살 여력이 있는지로 판가름 난다.

어깨에 힘주는 데는 ‘과시적 여가’도 큰 몫을 한다. 음악, 미술 등의 취미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철학, 문학 같은 인문학은 또 어떤가. 살 만하지 않으면 이런 분야를 전공하기는 쉽지 않다. 해봤자 돈이 안 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뼈대 있는 가문들은 이런 분야를 필수교양처럼 여긴다. 경제력과 품위를 드러내는 데는 이만 한 여가도 없겠다.

하지만 무턱대고 돈을 뿌렸다간 되레 역효과만 날 것이다. 사람들은 낭비를 싫어하며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들을 우러러 본다. 버블린은 이를 ‘제작본능(workmanship instinct)’이라 한다. 반면, 아득바득 하는 삶도 좋게 보지 않는다. 신산스러운 생활은 천한 계층의 특징 아니던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여유롭게 낭비하면서도 생산적이고 근면하게 보여야 한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여유 있는 사람들, 즉 유한계급들도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네들이 매달리는 일들은 하나같이 없어도 된다. 예술을 배우는 모임, 스포츠 활동, 근사한 직함이 달린 친교모임 같은 활동은 근면성실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품격까지 안겨준다.

게다가 과시적 소비와 여가는 전문적인 소양까지 필요로 한다. 와인을 제대로 즐기려면 알아야 할 지식이 하나 둘이 아닐 테다. 와인 산지, 나무의 품종, 술을 담근 햇수에 이르기까지 숱한 공부를 해야 한다. 골프 같은 스포츠, 첼로 연주 같은 예술 활동도 마찬가지다.

대공황으로 신산스러운 1920년대, 먹는 문제조차 해결 못하는 집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꼭 필요한 사치’를 위해 식비를 줄이는 쪽을 택했단다. 낡은 교복이 창피해서 학교 못가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과시적 소비가 어느덧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가 출산율까지 내리 누른다고 지적한다. 내세울 만하게 아이를 기르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드는 탓이다. 엄청난 사교육비가 부모의 어깨를 누르는 우리 현실은 베블런이 걱정했던 모습 그대로다.

과시적 소비는 절대 줄어드는 법이 없다. ‘괜찮게 사는 삶’의 기준은 날로 올라가기만 한다. 경제를 살리자고 온 나라가 난리다. 과연 우리는 먹고살기 어려워서 괴로워하는가? 오히려 ‘먹고살 만하게 보이기 어렵기에’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짜 문제가 이것이라면 우리에게 탈출구는 없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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