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관계자들 “어이없다”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서울-경기지역 특목고엔 지필고사 없는데 폐지라니”

18일 한나라당과 교육과학기술부의 당정협의에서 논의된 ‘사교육비 경감 대책(안)’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대실망’이었다.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 관계자는 어이없어했고, 학부모는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에서는 “이 정도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 그 호들갑을 떨었느냐”고 말했다.

“없는 지필고사 폐지하는 게 대책?”

서울시내 한 외고 교장은 “내신만으로 학생을 뽑게 되면 특목고 설립 취지는 사라지게 되고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학원으로 완전히 변질될 것”이라며 “학생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평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은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외고 교감은 “사교육의 진앙이라 일컬어지는 서울, 경기지역 특목고에서는 지필고사가 없다”며 “없는 지필고사를 폐지하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과학고 교장 출신의 A 씨는 “올림피아드 입상자와 영재교육원 수료자를 위한 특별전형을 폐지하겠다는 방안은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키우겠다는 수월성 교육방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정부의 교육정책이나 철학이 여론에 떠밀려 표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외고 사교육비 핵심은 ‘영어듣기평가’

학원 관계자들은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고 변죽만 울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재교육 및 특목고 입시 전문학원인 ㈜하늘교육 임성호 기획이사는 “외국어고 입시의 핵심은 지나치게 어려운 영어 듣기평가”라며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듣기평가를 만점 받은 학생들도 외고 듣기평가에서는 70점을 받는 일이 허다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외고의 영어 듣기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해외 연수를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 학원가의 지적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우리나라 어학원이 호황을 이루는 것도 외고의 영어 듣기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임 이사는 “외고 관련 사교육비 대책에서 ‘영어 듣기평가’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다면 그 대책은 대책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강남권 한 학원 강사도 “지금 논의되는 대책은 결국 내신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귀결된다”며 “이 대책이 발표되면 아마 당장 학부모들로부터 내신 강화반을 편성할 생각이 없느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신 시험이야말로 학원이 존립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이유라는 것을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안다”고 말했다.

외고 진학을 원하는 중2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현재 외고 입시는 내신이 아주 우수한 학생을 뽑는 전형도 있고 구술면접을 잘 보거나 영어를 잘하는 학생을 뽑는 전형도 있어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준비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외고 입시에서 내신만 일방적으로 강화하면 공교육이 강해지기보다 내신을 위한 단순암기식 사교육에 아이들을 내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자율화, 수월성 교육 기조 역행

큰 틀에서 정책 방향이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일선 학교에 많은 권한을 넘겨주는 ‘학교 자율화’와 획일적 평준화의 틀을 깨고 우수한 학생들이 더 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수월성 교육’인데 ‘사교육비 절감 대책’이 이를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는 “이명박 정부 출범부터 일관되게 추진해 온 정책이 ‘학교 자율화’와 ‘수월성 교육 확대’”라며 “사교육비 절감 대책은 이 일관된 정책 기조와 역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져야지 포퓰리즘적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순근 서울대 교수(교육학)는 “학교 자율화나 수월성 교육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재 특목고는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돼 사교육을 받았느냐 아니냐가 사실상 당락을 결정한다”며 “공정한 경쟁이나 사회 정의 차원에서 일종의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학교에 맞는 다양한 인재를 뽑으려면 장기적으로는 고교 입시에서도 입학사정관제가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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