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띠 풀고 어깨띠 두른 기아차 노조

  • 입력 2009년 5월 12일 03시 03분


기아자동차 노조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주변에서 신차 ‘쏘렌토R’를 홍보하는 판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김종석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장(앞)이 시민에게 홍보 전단지를 건네고 있다. 사진 제공 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 노조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주변에서 신차 ‘쏘렌토R’를 홍보하는 판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김종석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장(앞)이 시민에게 홍보 전단지를 건네고 있다. 사진 제공 기아자동차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라고 쓰인 어깨띠를 두른 한 중년 남성이 허리를 숙이며 행인들에게 홍보 전단을 건넸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쏘렌토R’의 품질과 생산을 책임지겠습니다. 기아차 노조를 믿고 ‘쏘렌토R’를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전단을 나눠 주며 ‘쏘렌토R 사랑’을 호소한 이 남성은 김종석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장이다.

강성(强性)이었던 기아차 노조가 변했다. 그동안 반대하던 회사 측의 생산 유연화 제안에 지난해 말 합의한 데 이어 서울모터쇼는 물론이고 길거리까지 나와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를 홍보하고 나섰다. 기아차 노조는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연속 파업을 했을 정도로 강성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세계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해 12월 사측이 제안한 혼류 생산과 물량 재배치에 합의했다. 혼류 생산은 1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며 시장 변화에 따라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방식. 외국 자동차 기업에선 수십 년 전에 도입됐지만 국내에서는 그동안 “노동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노조의 반대로 노조가 없는 르노삼성자동차 외에는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기아차가 물꼬를 튼 뒤 현대차도 이달부터 혼류 생산을 시작했다. 기아차 노조는 사측과 함께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강원 인제군과 홍천군에서 각각 노사 합동 봉사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김 지부장은 지난달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모터쇼에 자동차 회사 노조위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참여해 서영종 사장과 함께 신차 쏘렌토R를 홍보했다. 김 지부장은 신차 발표회장에 노조 조끼 대신 말쑥한 재킷 차림에 헤드셋 마이크까지 낀 모습으로 나타나 “나부터 판매 확대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11일 거리 홍보는 그때 약속을 지킨 것이다. 기아차 노조원과 우리사주 조합원 70여 명도 이날 함께 참여해 고속터미널 주변에서 판매 캠페인을 벌였다.

자동차업계 안팎에서는 기아차 노조가 이처럼 달라진 가장 큰 이유를 “‘회사 없이는 일자리도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과거 경영난에 따른 부도를 경험한 기아차 노조로서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위기를 보는 시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가 왔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원래 경제위기가 오거나 회사 경쟁력이 약해지면 노사 협력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기 마련”이라며 “판매 캠페인을 벌이는 것 정도로 노조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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