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들었어도 중상해 사고 땐 형사처벌’ 첫 사례 나오나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다리 절단 사고낸 덤프트럭 운전자

경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

3월 2일 오전 9시 55분경 강원 원주시 개운동 원주고 근처 사거리. 15t 덤프트럭을 몰고 가던 김모 씨(35)는 자전거를 끌고 가던 오모 씨(75)를 미처 보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 오 씨는 우회전하던 트럭의 오른쪽 앞부분에 부딪힌 뒤 자전거와 함께 도로에 넘어졌다. 하지만 운전자 김 씨는 이때까지도 오 씨가 부딪힌 사실을 알지 못했고, 오른쪽 앞바퀴가 오 씨의 다리를 타고 넘은 뒤에야 사고 사실을 알아챘다. 오 씨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겨졌지만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호대기하다 우회전하는 상황이어서 덤프트럭의 속도가 빠르진 않았지만 트럭 운전석이 높은 탓에 가까운 위치에 있던 피해자를 미처 보지 못해 중상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조사해 온 강원 원주경찰서는 김 씨를 14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처분 의견으로 춘천지검 원주지청에 송치했다. 이번 사건은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일부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린 뒤 처음으로 형사처벌 사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청은 “이번 원주에서 발생한 중상해 사고는 헌재 위헌 판결에 따라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헌재의 위헌 결정 이전에는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에 따른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가해자가 음주운전, 과속, 중앙선 침범, 불법 U턴, 무면허 운전, 제한 속도보다 20km 이상 과속 등 특례법 3조 2항에 규정된 10개 유형과 뺑소니의 잘못을 범하지 않은 경우 기소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었다. 운전자 김 씨는 기존 규정대로라면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고, 특례법 3조 2항에 규정된 잘못이 아니어서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은 것과 관계없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범칙금을 납부하기만 하면 됐다. 이 경우 피해자의 치료비 등은 보험사에서 지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재판을 통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건을 조사한 원주경찰서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운전자에게 안전운전의무 불이행으로 5만 원짜리 스티커만 끊어주고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할 사건이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원주지청 관계자도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대검찰청에서 밝힌 중상해 기준에 맞는 것으로 본다”며 “(송치 후 한 달 정도의) 합의 기간에 합의가 안 되면 기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검이 특례법 위헌 판결 이후 처벌 대상인 중상해 교통사고 기준을 발표할 당시 일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가해자가 기소될 위기에 처한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무리한 피해보상 합의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중상해를 입혔더라도 피해자와 합의만 이뤄지면 기소 대상이 아니지만 운전자는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법조계에선 만약 중상해를 입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형사처벌을 빌미로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요구하면 공탁제도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법원에 공탁금을 냈다고 해서 피해자와 합의된 것으로 인정되진 않지만, 상대방이 본 피해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재판에서 양형의 참작 사유가 된다. 공탁은 기소 이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 도중에도 가능하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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