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장 “너무 힘들다… 나무라지만 말고 도와달라” 눈물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식약청 ‘전문가의 오만’에 빠졌나

연구는 “우리가 최고”… 행정은 “나몰라라”

예산 70% 연구에 쓰지만 정책반영은 미미

과자를 먹다가 이물질이 나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신고하는 것이 정상 절차다. 그러나 국민은 언론사로 제보한다. 식약청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13일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국회 답변에서 “저도 정말 괴롭다. 지난해에는 식품으로 온갖 곤욕을 치렀고, 금년에는 의약품으로 너무 힘들다. 나무라지만 말고 도와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식약청 직원들이 밤새워 일하는데 칭찬은커녕 비판만 쏟아지니 수장으로서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러나 국민은 이해하기 힘들다. 멜라민 파동이 터졌을 때도 윤 청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때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똑같은 풍경이 재현되고 있다. 1998년 출범한 식약청은 늘 칭찬보다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중국산 납꽃게 파동, 불량만두 파동, PPA 감기약 파동, 기생충알 김치 파동, ‘생쥐깡’ 파동, 멜라민 파동, 석면 파동을 겪어 온 국민에게 윤 청장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전문가의 함정’에 빠져=2004년 식약청 연구용역을 수행한 김창종 중앙대 교수는 ‘기능성 화장품의 안전성 평가연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탤크 등의 안전성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식약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멜라민 사태 때 주중대사관이 “멜라민 식품이 한국에도 유입됐을 가능성 있다”고 경고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과 너무나 판박이다.

이런 늑장 대응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전문가’들이 식약청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식약청 직원 1425명 가운데 44%인 633명은 연구직이다. 전체의 66%가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다. 전문가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의·과학적 지식에 의존해 정책을 결정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는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식약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연구직과 행정직 사이의 갈등도 원인이다. 한 공무원은 “요즘은 많이 개선됐지만 ‘옆집에서 불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말했다. 식약청이 2004년 12월 전문기관에 의뢰해 조직 컨설팅을 받았을 때에도 이 점이 지적됐다.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고,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거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4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식약청의 이런 조직문화는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9명의 청장 중 7명은 연구전문가다. 지금의 윤 청장 역시 의약품 전문가다. 행정 경험이 없는 ‘전문가 청장’들의 조직 장악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행정직은 행정직대로 “곧 다른 청장으로 바뀔 텐데…”라는 생각에 젖어 있다. ▽전형적인 복지부동=식약청은 연간 500여 건의 연구개발(R&D) 업무를 수행한다. 이 중 300여 건은 외부 업체나 기관에 용역을 준다. 식약청 예산의 60∼70%가 R&D로 나간다. 그러나 외주 용역 보고서를 제출받은 다음이 문제다. 과별로 ‘재량껏’ 활용토록 맡겨 놓으니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비율이 극히 낮다. 순환 보직으로 담당자가 바뀌면 용역보고서는 어디론가 처박힌다. 수백억 원의 세금이 낭비되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식의약품 업체에 식약청은 ‘독불장군’이나 다름없다. 식약청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이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식약청 공무원들의 금품 수수 비리는 단골로 등장한다.

식약청 현안을 전달하는 대변인실의 기능은 거의 정지 상태다. 일선 과와 대변인실 사이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기자 질문에 우왕좌왕하기 일쑤다.현안 파악이 안돼 기자들의 전화를 피하는 일도 흔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으려고 설익은 브리핑을 했다가 혼란만 증폭시키기도 한다. 정기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여론에 휘둘리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지고 국민 설득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문제 반복돼” 질타 쏟아져=13일 국회에서는 식약청의 늑장 대처와 석면 함유 탤크의 규제 및 기준 부재 등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매년 비슷한 문제가 반복돼 일어나고 있다”면서 “외국 관련 기관 및 정부 내 다른 부처와의 협력 부족 등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식약청은 항상 사건이 터진 뒤 인력과 예산을 늘려달라고 되풀이한다”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냐”고 추궁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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