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성향 정진경부장판사 “여론압박에 대법관 사직해선 안돼”

  • 입력 2009년 3월 18일 20시 07분


법원 내에서 개혁 성향 법관으로 통하는 정진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6·사법시험 27회)가 최근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신 대법관의 사퇴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담은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 게시판에 18일 올렸다.

정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신 대법관의 행위가 다소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신 대법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고 전제한 뒤 "여론의 압박으로 대법관이 사직한다면 내일 또 다른 여론에 의해 다른 대법관도 사직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해하게 된다"고 밝혔다.

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때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재판 속행을 독촉하는 e메일을 보낸 것에 대해서는 "시기를 놓친 형사처벌은 김빠진 맥주"라고 비유했다.

정 부장판사는 "유무죄나 양형의 문제는 재판권에 속하지만 사건의 절차에 관한 문제는 재판권과 사법행정이 교차하는 영역"이라며 "경험과 연륜이 많은 법원장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절차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독재정권 시절 일부 법원장이 정치권력의 주문을 재판부에 전달하던 시기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제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판사들도 독선과 무오류 의식에 대해 지적을 받아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 재야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를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를 제시했다. 경력 10년 이상, 40대 이상의 법조인 가운데 실력, 인품 등을 꼼꼼히 따져 법관으로 뽑는 영미법계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이들에게는 국회의원급의 신분 보장과 함께 보좌관을 지원해줘 공정한 재판을 도와야 한다고 그는 밝혔다.

일부 판사가 이번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것에 대해서는 "법원장의 의견이 자신의 양심에 반한다면 직접 정중하고 단호하게 얘기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판사 회의를 소집해 문제를 거론하는 게 순서다. 여론의 힘을 빌리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침해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보적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이번 사건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식으로 이번 사건을 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는 시도를 경계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2005년 탈퇴한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예전 사법파동처럼 법원 내 이념 갈등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문제의 본질은 사법관료화와 그로 인한 선후배간 소통의 단절"이라고 꼽았다.

그러나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에는 다른 판사의 반박 글도 이어졌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장창국 판사는 "신 대법관이 사건 전부를 빨리 처리하라고 한 게 아니라 특정 사건을 지목한 것은 사법행정이 아니라고 본다"며 "해결책은 신 대법관이 알고 있고 스스로 결정하기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이종식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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