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씨를 만난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씨의 아들 고이치로(耕一郞) 씨가 한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면 저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KAL기 납북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고 정부는 외면해왔습니다. 공식적으로 북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본 정부가 부러울 뿐입니다.”
12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황인철 씨(42).
오랜 세월 동안 황 씨와 그의 가족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한으로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아버지가 친척 동생과 황 씨를 끌어안고 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만이 아버지와 함께했음을 어렴풋이 기억나게 할 뿐이었다.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을 태우고 강릉을 떠나 서울로 오던 비행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고정간첩에 의해 북한으로 강제 납치됐다. 황 씨의 아버지인 강릉 MBC(당시 영동MBC) PD 황원 씨(당시 32세)도 이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사건 발생 66일 만에 승객 39명(간첩 1명 제외)은 귀환했지만 승무원 4명 전원과 승객 7명은 북한에 잡혀 있게 됐다. 그 후 승무원 4명은 모두 북한에 살아 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황원 씨 등 승객 7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귀환한 승객들은 “북한에서 사상교육을 받을 때 황 씨가 북한 교육원들을 이론적으로 논박하고 가곡 ‘가고파’를 선창했다가 교육원들에게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40년이 지나도록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유년 시절, 황 씨는 아버지의 납북 사실조차 몰랐다.
“미국에 출장 갔다는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고…. 그저 어떻게 된 건가 싶었죠.”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작은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납북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면서 간첩의 아들이라고 놀림도 당했다. “그땐 워낙 반공교육이 투철했던 시대라 납북이라고 해도 월북으로 받아들였죠.”
이후 황 씨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야만 했다.
“아들마저 잡아갈라…”
충격 받은 어머니 수년째 병원 생활
“누군가와 얘기할 때 아버지에 대해서 피치 못하게 거짓말을 해야 했죠.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제가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시엔 연좌제가 심했는데 오해 받아 연좌제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하고 싶은 걸 포기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당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황 씨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순간에 사라지신 데다 자식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았고 그러다보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됐죠. 저도 차라리 고아원이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살았어요.”
어머니에겐 극도의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저를 찾아와 불쑥불쑥 ‘누군가 너를 잡아가려고 한다’며 끌고 가기도 했어요. 또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으니 너는 커서 신부가 돼라’고 하셨죠. 빚도 늘어나 빚쟁이를 피해 1년에 몇 번씩 이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결국 황 씨의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돼 수년째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황 씨는 성인이 되고 난 뒤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2003년 아버지의 이름을 따 ‘원 북스’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황 씨는 최근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1992년 자수한 간첩 오길남 씨(67)에게서 “아버지가 1986년 당시 대남방송인 ‘구국의 소리’에서 방송인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황 씨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지금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지만 가슴 한쪽은 무겁기만 하다.
“살아계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언론인으로서 지녔던 성향, 사상, 꿈, 처자식, 부모까지 다 잃었는데 과연 행복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현재 황 씨는 아버지의 생사 확인과 송환 촉구를 위해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1970년 국제기자연맹(IFJ)과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납북자들의 송환을 요청했던 한국기자협회가 다시 한 번 아버지와 같은 납북자들의 송환을 촉구해주길 요청할 계획이다.
“생사 여부를 알려주세요. 이게 저의 소원입니다. 송환 문제를 이념과 정치로 왜곡하지 말고 가족의 아픔을 통해서 바라봐주십시오. 제발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