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가뭄 대처” vs “민영화 사전포석”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병 수돗물’ 판매 법안추진 논쟁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가뭄이 겨울까지 계속되자 강원 태백시는 현재 하루 5시간씩 제한 급수를 하고 있다. 제한 급수가 어려운 곳에는 비상 급수차를 동원해서 건물 저수조에 물을 채우고 있다. 태백시 상수도사업소는 “가뭄으로 저수량이 줄었고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보내주는 물도 평소의 60∼70%에 불과하다”며 “하루 수돗물 4만 t을 소비했는데, 현재 공급량은 2만 t 정도”라고 말했다.

가뭄이 이어지자 병입(병에 담은) 수돗물의 시중 판매가 새로운 해결책으로 등장하고 있다. 환경부는 “생수보다 훨씬 저렴하게 수돗물을 파는 것도 가뭄 등 자연재난에 대처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수돗물 민영화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면서 “정수장에서 집까지 보내는 과정에서 흘리는 물을 줄이는 게 오히려 해결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개정안 3, 4월에 처리할 것”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수자원공사가 병입 수돗물을 시중에 판매할 수 있는 수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면 먹는 물 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7월까지 고칠 계획이다. 그러나 수도법 개정안은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 4개월째 머무르고 있다. 수도법 개정안에는 한나라당이 찬성하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반대한다.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 측은 “환노위는 지난달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않아 수도법 개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라며 “당 지도부는 이달 내에 처리하자는 의견이라서 ‘직권상정’ 등을 이용해서 환노위 추미애 위원장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환노위는 소속 의원이 14명으로 한나라당 8명, 민주당 4명, 자유선진당 1명, 민주노동당 1명이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 측은 “수도법 개정안은 논의할 게 많아서 지체됐다. 3, 4월에 수도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 0.5L 소비자값 300원… ‘부자 수돗물’ 논란

병입 수돗물 시판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병입 수돗물을 판매하려면 고도정수처리시설을 새로 갖추는 등 시설투자가 필요해서 수돗물 값을 올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쌓으려면 정수장에서 흘려보내는 물을 오염시키는 노후관 교체나 배급과정에서 새는 누수율을 줄이는 게 먼저라는 것.

환경부가 추정하는 병입 수돗물(0.5L 기준)의 순수 물값은 0.3원 정도로 페트병에 담아 유통과정까지 거치면 병입 수돗물의 소비자가는 300원 정도로 늘어난다. 특권층만 이용하는 ‘부자 수돗물’과 일반 수돗물이 이원화된다는 주장이다.

페트병에 담는 것 자체가 저탄소 정책에 역행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에 환경부는 병입 수돗물은 꼭지 수돗물(일반 수돗물)이 아니라 시판되는 생수와 비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돈벌이’를 위해서 추진하는 게 아니라 수돗물의 이미지를 올리고 물 부족 지역의 식수난 해소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뭄 등 재해발생 지역에 병입 수돗물을 생수보다 싸게 유통시킨다는 구상이다.

환경부는 “병입 수돗물을 시판해 발생하는 이익금도 현재 적자인 상하수도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정치보다 경제적 시각으로 해결을”

전문가들 사이에도 병입 수돗물 시판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린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수돗물을 담을 페트병을 제작하려면 원료인 석유를 많이 써야 해서 오히려 저탄소 정책과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윤주환 한국물환경학회장(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은 “가뭄 지역에 병입 수돗물을 저렴하게 공급하면 의미가 있다”며 “수돗물 문제는 경제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시각에서 보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수돗물을 병에 담아 시중에 팔고 있다. 펩시콜라사가 만든 아쿠아피나(수돗물을 여과처리)의 2006년 매출액은 21억7000만 달러. 일본에서도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에서 0.5L짜리 병입 수돗물이 병원, 다중이용시설 등 제한된 장소에서 100엔 안팎에 팔리고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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