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육아해직!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경제위기에 ‘1년 쉰 뒤 사표’ 편법해고 늘어

임산부들 “휴직급여라도…” 울며겨자먹기 수용

중소기업에 다니는 여성 S 씨(31)는 다음 달부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잇달아 쓰는 ‘장기 휴직’에 들어간다. 휴직 후 돌아올 자리는 없다. 사실상 해고됐기 때문이다.

그는 8개월 전 임신한 후 회사 측의 직간접적인 퇴사 압력에 시달리다 못해 이같이 하기로 회사 측과 합의했다. 휴직기간에 원래 회사가 부담해야 할 건강보험료도 자신이 낼 예정이다. S 씨는 “출산휴가 급여 3개월에다 육아휴직 급여를 월 50만 원씩 12개월까지 받을 수 있다”며 “어차피 그만둬야 하는데 양육비라도 건지려면 이 방법이 낫다”고 말했다.

임신 7개월인 K 씨는 지난달에 상사에게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다녀온 뒤 권고사직 처리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K 씨는 거절했지만 회사는 ‘개인의 특수 상황을 고려한 직무수행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한다’는 사규까지 새로 만들어가며 재택근무를 명령했다. K 씨는 하는 수 없이 육아휴직을 받아들였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에 법적 구제를 고려하고 있다.

최근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육아휴직이 편법적인 부당해고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이 늘고 있다. 정부와 경제단체 등이 범사회적인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취약 계층인 임신 여성 근로자에 대한 해고 압력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 급여 수급자는 2만9145명으로 2007년보다 37.5% 늘어났고, 급여 지원액도 984억3100만 원으로 61.4% 급증했다. 불황이 심해진 지난해 12월∼올해 1월의 육아휴직 급여 수급자는 5245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4282명)보다 22% 늘었다. 노동부는 ‘육아휴직제도가 정착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냈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년 12월~올 1월 육아휴직 신청, 1년 전보다 22% 증가▼

한국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는 성차별 관련 상담 중 ‘임신·출산으로 인한 해고’ 상담이 2007년 34.8%에서 지난해 55.7%로 늘었다. 청담노동법률사무소 박종천 노무사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가 인력 감축을 할 때 임신부 근로자를 먼저 해고하고 있다”며 “근로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승소 후 복직해도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 어려우므로 ‘서류상 육아휴직’이라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퇴사 압력을 견디다 못해 회사 측에 권고사직을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임신 3개월째인 L 씨는 임신 사실이 알려진 후 상사에게 하루에 한 번꼴로 불려가 “배부른데 일하기 힘들지 않으냐” “다른 사람 보기에 좋지 않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L 씨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권고사직을 요청했다. 그는 “더 버틸 자신이 없으니 차라리 권고사직을 당하고 실업급여를 받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업급여는 자진퇴사가 아닌 권고사직일 때만 최소 하루 2만8800원씩 240일까지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사용자 측의 부당해고를 근로자가 묵인할 경우 적발이 쉽지 않다”고 했다.

노무법인 비젼의 박문배 노무사는 “올해 들어 임신부 근로자들의 상담이 2배로 늘었다”면서 “대체인력 채용, 퇴직금 적립 등 임신부 고용 비용을 기업에만 맡겨서는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 연구위원은 “프랑스에서도 1990년대 중반 경기 침체기에 여성 근로자들이 양육수당을 받으면서 사실상 퇴직을 한 사례가 많아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모성권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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