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그 골목엔 뭔가 있다]<14>서울 창신동 인장골목

  • 입력 2009년 3월 2일 03시 00분


지난해 노동부로부터 인장 공예부문 명장으로 선정된 유태흥 명장이 정성스레 인장을 새기고 있다. 1950년대 형성된 창신동 인장골목에는 현재도 유 명장의 가게를 비롯해 40여 곳의 인장가게가 모여 있다. 홍진환 기자
지난해 노동부로부터 인장 공예부문 명장으로 선정된 유태흥 명장이 정성스레 인장을 새기고 있다. 1950년대 형성된 창신동 인장골목에는 현재도 유 명장의 가게를 비롯해 40여 곳의 인장가게가 모여 있다. 홍진환 기자
조각사 80명 활동… 부시 방한때 새겨가기도

“인장의 날 행사 열어 어린이 도장 선물할 것”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는 유명한 골목이 많다. 100여 개의 도매점이 밀집해 있는 ‘완구 골목’은 1960년대에 형성됐고, 1970년대 이후에는 ‘수족관 거리’와 ‘신발 거리’가 생겼다.

이처럼 볼 것 많고, 살 것 많은 동네지만 창신동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터줏대감은 따로 있다. 바로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장(印章) 골목이다.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삼중당, 현인당, 태광인재사 등 인장 가게가 줄줄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동묘앞역(1, 6호선) 방향으로 보람약국까지 100m 정도에는 두 집 걸러 한 집이 인장 가게다. 뒷골목에도 인장 점포가 밀집해 있다.

가게 규모가 작은 데다 대부분의 작업이 가게 안에서 이뤄지는 탓에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국내에서 도장과 관계된 대부분의 작업은 창신동 인장 골목을 거쳐 간다고 보면 된다.

○ 가게 40여 곳에 조각사 80명 넘어

이 일대에는 인장업을 하는 가게만 40여 곳, 인장을 새기는 조각사만 8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조각사는 수준급 기술이 있는 일류 조각사들이다. 2008년 노동부로부터 인장 공예 부문 명장으로 선정된 유태흥 명장(69)이 대표적 인물이다.

거인당을 운영하고 있는 유 명장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직 대통령과 재계 유명 인사들의 인감도장을 직접 팠다. 지난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정부가 대통령 부인 바버라 여사와 딸 제나 씨에게 기념 선물로 준 도장 역시 유 명장의 손에서 태어났다.

인장 골목은 또 도장 관련 제품의 집결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값이 싼 목도장부터 플라스틱 도장, 물소뿔 도장, 인조 상아 도장, 대추목 도장 등이 도매로 거래된다. 고가의 춘천옥도 구할 수 있다. 춘천옥에 새긴 도장은 가격이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도장 재료나 작업 도구 등은 일단 창신동 인장 골목에 모였다가 서울 다른 지역이나 지방으로 흩어진다. 이곳에서는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도 도장을 팔 수 있다. 인장 가게가 많다 보니 몇몇 집은 휴일에도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 인장 골목 특화거리로 부흥 노려

창신동 인장 골목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곳 노점에서 일했다는 박순옥 씨(79)는 “이전까지 여기는 하다못해 풀빵장사도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인장 가게가 하나 둘씩 들어와 장사가 되더니 뒤따라 인쇄업소와 사무용품 업소가 몰리면서 상권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박 씨는 1960년대 후반 왕산로 길가에 영광인재사를 열었고, 요즘은 아들과 함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창신동 인장 골목은 번성을 거듭해 1990년대 초에는 점포가 80여 곳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후 서명 문화가 확산돼 도장 수요가 줄면서 지금은 40여 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인장 골목 업주들은 종로구청과 함께 ‘인장의 거리’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거리 초입에 인장 골목임을 알 수 있는 대형 표지석을 만들고, 각종 도장 관련 행사를 열어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것.

업주들은 올해 어린이날을 ‘인장의 날’로 정해 구내 어린이 200여 명에게 이름을 새긴 도장을 선물할 예정이다.

유태흥 명장은 “국새가 나라를 상징하는 것처럼 인장이란 것은 자기를 상징하는 정표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전통 예술의 한 갈래인 인장의 부흥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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