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동결” “고용유지” 껴안은 노사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8분


노사정 및 민간단체 대표들이 23일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합의문’을 발표한 뒤 위기 극복을 다짐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수곤 경희대 명예교수, 조계종 세영 스님, 엄신형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대모 노사정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이영희 노동부 장관,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영한 기자
노사정 및 민간단체 대표들이 23일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합의문’을 발표한 뒤 위기 극복을 다짐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수곤 경희대 명예교수, 조계종 세영 스님, 엄신형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대모 노사정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이영희 노동부 장관,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영한 기자
노사민정 ‘경제위기 극복’ 대타협 선언… 64개 실천방안 합의

勞 “파업 자제” 使 “해고 자제”

서로 한발씩 양보해 고통 분담

민노총 반대… 실효성 불투명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민간 등 사회 각 경제 주체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임금 동결 및 절감, 고용 유지 등 고통분담에 적극 나서기로 23일 합의했다.

노사민정비상대책회의(공동위원장 이세중, 김대모)는 이날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4개 항에 이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날 합의는 각 경제 주체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한발씩 양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모호한 만큼 향후 추진 과정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노동계의 한 축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의미가 반감된 측면도 있다.

▽고용 유지 및 임금 절감=이날 합의는 기업이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노동계는 임금 절감 등 고통을 분담하고, 정부는 이들 기업 및 근로자를 최대한 지원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노동계는 이날 합의문에서 △위기 극복 과정에서 파업 자제 △임금 동결·반납 또는 절감 실천 △기업 인사·경영에 불합리한 참여 요구 자제 등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경영계는 △경영상 이유에 따른 해고 자제 및 고용 수준 유지 △부당 노동행위 근절 △하청 및 협력업체 고용 안정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또 올해 임금·단체협상 때 산하 단체에 임금 인상 및 동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노사 양측은 각 사업장 실정에 맞게 교대제 개편, 근로시간 단축, 임금피크제 도입, 인력 재배치 및 재택근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적극 실천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소득이 감소한 근로자 및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지원책 마련은 물론, 비정규직 등 사회적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재원을 추가경정예산에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또 일자리 나누기 실천 기업의 도산으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에게는 실업급여 및 퇴직금 산정을 임금 절감 이전 금액으로 환산해주기로 했다.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는 각각 합의 사항 이행 점검단을 만들어 개별 사업장까지 대타협 정신이 자리 잡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성숙된 합의 도출, 앞으로가 더 중요=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월에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정부 주도로 이뤄진 데다 주 내용이 정리해고 도입 등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반면 두 번째인 이날 합의는 각 경제 주체의 자율적 의지로 이뤄진 데다 내용면에서도 양보를 통한 위기 극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물론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통분담 수준을 놓고 한국노총은 “‘임금 삭감’이란 용어는 절대 쓸 수 없다”며 맞섰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기초생활보장수급자 확대 등 31조9000억 원의 재원 마련을 요구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취약계층 지원 액수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어렵다”며 “하지만 합의 정신 이행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에 이 부분을 적극 반영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합의는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불참한 데다 한국노총과 경제 5단체가 산하 단체에 이행을 강제할 수 없어 아직까지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합의문의 핵심은 노동자의 파업 자제와 임금 동결 및 삭감”이라며 “일자리 나누기는 없고 오로지 ‘노동자 죽이기’만 나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향후 실천 여부에 따라 이날 합의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평가한 전문가도 많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경영학과)는 “사회적 대타협을 계기로 이제 각 사업장에서 현장에 맞는 실천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 전방위로 이런 분위기가 확산될 때 경제위기 극복은 물론 새로운 노사관계 확립이라는 도약의 장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과)도 “아직까지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별 노사협상 과정에서 이번 대타협 정신이 작용한다면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선언식에는 한국노총 등 노동계,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제 5단체, 한국YMCA전국연맹 등 시민단체, 노동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기관 및 종교계와 학계, 언론계 등이 참여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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