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의 어머니’ 조성애 수녀가 전하는 사형수들 근황

  • 입력 2009년 2월 21일 18시 00분


사형제도 폐지 앞장선 조성애 수녀동아일보 자료사진
사형제도 폐지 앞장선 조성애 수녀
동아일보 자료사진
국회에서 열린 사형제폐지국가 기념식에서 조성애수녀(사형수사목전담)가 사형수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국회에서 열린 사형제폐지국가 기념식에서 조성애수녀(사형수사목전담)가 사형수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강호순 사건을 접하고 사형수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는 소리를 내는 것도 죄스런 일이기 때문에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더군요. 그리곤 자신과 강 씨에게 죽은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주님께 강호순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묵주기도를 수없이 반복하는 죄수도 있어요. 그들은 절대 자신들의 죄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사형제가 폐지되더라도 평생 뉘우치는 삶을 살 겁니다.”

‘사형수의 어머니’ 조성애(78) 모니카 수녀가 20일 사형수들의 최근 상황을 전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이후 정치권에서 사형제 조기 집행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조 수녀는 “그분들이 사형수들의 교화된 모습을 보셨으면 이렇게 잔인한 소리를 하지 못하실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조 수녀는 20년간 매주 화요일에 사형수들을 만나왔다. 1977년부터 사형수들과 편지 상담을 하던 조 수녀는 1989년부터 직접 면담을 시작했다. 서른 명이 훌쩍 넘는 사형수들이 조 수녀와 이야기를 주고 받아왔다. 수녀는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나오는 모니카 수녀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도 사형제를 반대했다. 추기경은 조 수녀를 자주 공관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고 은퇴 전에는 사형수들에게 세례와 견진성사를 주는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했다. 은퇴 후에도 간간히 교도소를 찾아 사형수를 만났다. 추기경은 8년 전인 2001년 11월 10일 마지막 국회 방문을 통해 “사랑으로 사형제를 폐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2007년 말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가가 된 것은 추기경을 비롯한 각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흉악범죄가 늘어나자 여당 일각에서 사형 조기 집행을 들고 나왔고 법무부 장관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 등 일부의원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조 수녀는 “지난해부터 사형수라도 원하면 노역장으로 보내줬어요. 그 전에는 미결수라고 해서 일조차 안 시켰거든요. 그래서 더 희망을 가졌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조 수녀는 “사형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막 태어난 귀여운 아기를 보셨나요? 사형수도 그렇게 태어났지만 살아오는 과정에서 잘못된 겁입니다”라며 “사형수 대부분이 어려운 환경에서 천대 받고 불쌍하게 자란 이들”이라고 말했다.

“사형수들 대부분 편부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따뜻한 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했던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개 줄에 묶여 화장실에서 밤을 꼬박 새운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먹을 게 없어서 이 집 저 집 친척 집을 전전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 애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야 아무개 왔다, 문을 잠가 버려라’고 했다는 거예요. 시골 애들은 밤에 잘 데가 없어서 엄동설한에 외딴 헛간 같은 데서 잤다는 겁니다. 형편이 그러니 학교에서도 환영받지 못해요. 가슴에 원한만 쌓이다 보니 피해 의식이 강해요. 남들이 잘 사는 걸 봐도 굉장히 속상한 거예요.”

조 수녀는 그동안 만났던 사형수들을 ‘그 애’라고 지칭하며 자기 자식처럼 아꼈다. 조 수녀에 따르면 막가파 사건의 주범 최 모 씨는 지금도 감옥에서 접하는 방송이나 신문에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괴로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는 조금이라도 죄를 씻기 위해 다른 수형자가 살다 나간 방을 청소하거나 노역을 신청한다고. 조 수녀는 “그 애는 손재주가 많아요. 너무 어렵게 커서 그렇게 됐어요. 어머니 원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용서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승용차 질주 살해범 김 모 씨에 대해선 “착하고 순진한 아이였고, 죽으면서 영치금을 가난한 재소자에게 주라는 유언도 남겼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사시에 말더듬이 장애가 있던 김 씨는 부모가 동네에 버렸다가 다시 데려가 키웠는데 끝내 엄마가 가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애 때문에 취직도 쉽지 않았다. 살아 보려 애썼지만 세상은 그를 조금 쓰다 버리고, 조금 쓰다버리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인생을 비관하고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었는데 어느 날 차를 몰고 사람들을 들이받아 죽였다. 그는 97년 사형 됐다.

연쇄살인범 A 씨는 감옥에서 조용히 살며 후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조 수녀는 “그 애가 ‘나는 용서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는 편지를 보내서 무척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조 수녀는 강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형수들은 매일 죽는 연습을 한다고 전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이 죽는 날인가’라고 했다가 해가 지면 ‘오늘 하루를 또 살았구나’라고 한다는 것. 사형수를 미결수로 두는 것은 매일 매일 그들의 피를 바짝바짝 마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 수녀는 사형 대신 ‘감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주장했다.

“사형수도 잘 가르치면 변합니다. 한 사형수는 죽기 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이 뭔지 사람대접이 뭔지 몰랐는데 사형수로 교도소에 들어온 뒤 그걸 알게 됐다’고 했어요. 그들을 보면서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조 수녀는 사형수의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아버지를 원망할 때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것이고,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하지 않느냐”며 다독거리는 것도 조 수녀의 몫이다. 조 수녀는 “가해자 가족들은 3대까지 숨어 삽니다. 그 사람들의 비참함도 말로 하지 못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흉악범의 얼굴 공개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사형수 가족이 보복을 당할 수 있고 자녀들이 그릇된 범죄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 그는 “보복은 보복을 부릅니다. 사형수에게 화를 가족 중에도 용서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얻고 미움을 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사형 집행이 이뤄진 것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이다. 이 때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이후 정부는 12년째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현재 형이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는 58명에 이르고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동아닷컴 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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