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 협박’ 전원 유죄 판결

  • 입력 2009년 2월 20일 02시 56분


“조직적 위력 행사로 업무방해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불법”

“다음 카페 ‘언론소비자주권(언소주) 국민캠페인’의 광고주 압박운동은 명백하게 집단 괴롭히기 양상, 즉 위력(威力)에 해당합니다. 이 점이 업무방해죄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19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메이저 신문 3사의 광고주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누리꾼 24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이림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기자와 만나 판결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로 일부 누리꾼의 공격을 받으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는 “일반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상식으로 판단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17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5개월 동안 피고인 24명에 대한 방대한 수사 기록을 검토했다. 증인으로 신문사 관계자 6명과 피해업체 관계자 28명이 법정에 나와 증언했다.

언론 보도에 따른 불만 때문에 광고주를 압박한 사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앞으로 유사한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5개월 동안 180개 피해업체 전수 조사”=이 부장판사는 “전례와 판례가 없는 사건이라 자료를 찾는 데도 쉽지 않았다”며 “미국에도 불매운동 사이트가 있지만 불매의사를 밝히는 정도이지 ‘언소주’ 카페처럼 결집력이 강하고 집단적으로 위력을 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언소주 카페 누리꾼들이 공격할 업체 리스트를 정해 배포한 뒤 항의전화나 홈페이지 과다 접속, 항의글 도배 등으로 특정 업체의 업무를 방해한 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법행위라는 것.

‘광고주압박운동은 정당한 소비자보호운동’이라는 누리꾼들의 주장도 이 부장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숙제 게시판’ 등을 통해 사전에 계획을 짜고 조직적으로 업무를 방해해 해당 업체가 본의 아니게 광고계약을 중단하게끔 한 것은 헌법에 보장되는 소비자보호운동의 자유 범위를 벗어났다는 판단이다.

이 부장판사는 광고주압박운동이 광고주 회사뿐만 아니라 신문사의 업무도 방해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그는 업무방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3개 신문사가 제출한 피해업체 180곳을 꼼꼼히 살폈다. 이들 업체 중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으며 △피해를 봤다고 증언하고 △본의 아니게 광고를 중단한다고 사과문을 게재한 13곳을 추려내 신문사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의 증거로 인정했다.

대부분의 혐의에 유죄를 인정했는데도 형량을 비교적 낮게 정한 이유로는 “피고인 대부분이 초범이고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인지 몰랐던 점, 당시 격앙됐던 여론에 편승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피고인-다음 ‘언소주’ 회원들 법정서 난동

사진찍고 경위와 몸싸움… 재판부에 욕설

▽선고 후 법정 소란…피해 업체 “익명 이용한 공격 사라지길”=이날 재판에서 피고인들과 언소주 카페 회원들은 법정 안에서 사진을 찍고 고함을 지르는 등 소란행위를 벌였다.

피고인 중 한 명인 김모 씨는 이 부장판사가 법정에 들어서기 전에 피고인석에서 휴대전화로 동료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지 않자 일어서서 법정 안에 있던 동료에게 법정 안을 촬영하도록 했다.

김 씨의 동료는 법정 뒤쪽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수차례 터뜨렸고 법정은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법정 내 사진 촬영이나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돼 있지만 김 씨는 “판사가 들어오기 전에는 사진 촬영은 괜찮다”며 방청석을 향해 고함을 쳤다.

김 씨는 또 법대 앞에 서서 언소주 카페 회원들과 함께 “정치검찰 각성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쳐 법정은 마치 시위현장 같았다.

이 부장판사가 입정해 유죄 취지로 판결문을 읽어나가자 한 방청객은 일어나 “사법부는 죽었다”고 고함을 질렀다. 선고를 마치고 이 부장판사가 퇴정한 뒤 언소주 회원들은 10여 분 경위들과 승강이를 벌이며 재판부에 대한 욕설과 비방을 쏟아냈다. 경위들이 “채증을 해 처벌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때서야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이 정부와 메이저 언론의 눈치를 본 판결을 했다”고 비판하며 삭발식을 갖기도 했다.

한편 광고 중단 협박을 받은 한 피해업체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통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회사의 영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공격을 하는 일은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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