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그 골목엔 뭔가 있다]<12>서울 삼각지 화랑가

  • 입력 2009년 2월 16일 02시 58분


예술혼 살아있는 ‘서울의 몽마르트르’

50년대 미군부대따라 형성… 무명화가 100여명 활약

다양한 그림에 가격 저렴… 대중도 쉽게 접근 장점

서울 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인 삼각지역의 구내 분위기는 다른 역과는 확연히 다르다.

13일 이곳을 찾았을 때, 용산 삼각화가협회 화가들의 알록달록 다채로운 그림들이 역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철역 밖으로 나오니 본격적인 화랑가가 펼쳐졌다. 숭례문과 서울을 담은 풍경화부터 직선과 곡선이 화폭을 가로지른 추상화, 꽃과 사과가 담긴 정물화까지…. 대로변을 따라 늘어선 화랑과 액자 상점의 그림들이 오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 실력 있는 무명 화가들이 모인 곳

삼각지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이 끝난 뒤 용산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을 따라 그들에게 초상화나 풍경화를 그려주던 화가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표구점이나 액자전문점도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화랑가의 명맥이 이어져 삼각지에는 지금도 50여 개의 화랑, 표구점, 액자상점 등이 영업 중이다. 삼각지에서 활동하는 화가도 100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화가와 화랑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각지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명 화가들이 저렴한 그림을 그려내다 보니 삼각지 그림을 ‘싸구려 그림’, ‘이발소 그림’ 등으로 폄훼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삼각지 사람들은 “삼각지야말로 학력이나 인맥이 아닌 순수한 재능으로 살아남은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삼각지 ‘열린 화랑’의 대표이기도 한 화가 김수영 씨는 “한국의 대표적 화가 박수근 화백도 미군부대 주변에서 활동했었다”며 “꾸준히 경쟁을 해 와서 그런지 화가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으며 미술대전 입선자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각지 그림은 1970, 80년대 수출 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지금은 싼 중국 그림에 밀렸지만 1970년대 초부터 10여 년간 미국에서 거래되는 대중적인 그림의 상당수가 삼각지에서 수출된 그림이었다.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삼각지 그림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풍경화와 정물화 등 그림을 잘 모르는 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다양한 그림이 가득한 데다 가격대도 3만 원부터 100만 원 안팎이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 또한 소탈한 옷차림의 화가들이 붓을 들고 작업을 하다 그림을 설명해 주는 등 자유로운 감상 분위기도 삼각지 화랑가의 특징이다.

○ 서울의 ‘몽마르트르’를 꿈꾸는 곳

삼각지 화랑거리는 이제 ‘이발소 그림’이라는 멍에를 벗고 시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그 하나가 바로 2005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삼각지 거리미술축제’. 거리에서 작업을 펼치고 있는 화가들과 갖가지 그림을 만나고 거리공연도 즐길 수 있는 축제. 올해는 가을에 열릴 예정이다.

용산삼각지화가협회 이종성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많은 화랑과 화가들이 모여 있는 곳은 드물다”며 “거리미술축제와 전시회 등을 통해 삼각지가 파리 몽마르트르 못지않게 역사적인 미술 공간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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