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체납자-서울시 38기동팀 “숨바꼭질” 따라가보니

  • 입력 2009년 2월 12일 21시 04분


'고급 승용차에, 미술관에, 집 안 엘리베이터까지….'

세금을 안 내고 버티면서도 그들의 생활은 호화스럽기 짝이 없었다. "경기가 안 좋아서…"라는 핑계를 댈 때는 헛웃음마저 나왔다.

지난해 서울시세 500만 원 이상 고액 체납자는 2만412명. 이들에게 부과된 4825억 원의 세금 가운데 징수액은 520억 원으로 징수율은 10.78%에 그치고 있다.

이들 고액 체납자 가운데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수시로 부부동반 여행을 떠나며 호화생활을 하는 가 하면 교묘히 재산을 숨기는 등 '얌체족'들이 적지 않다.

본보는 11일 서울시 '38세금기동1팀'을 따라다니며 이들과 고액 체납자와의 지루한 숨바꼭질을 밀착 취재했다.

38세금기동팀의 하루는 동이 트기 전에 시작된다. 이른 아침시간대에 찾아가야 체납자를 만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전 7시 경 처음 도착한 곳은 1억3000만 원 가량의 세금을 체납한 A씨의 모친 명의로 된 양천구 목동의 2층 짜리 주택이었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자산가 A씨는 2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을 77세의 모친과 가족들에게 넘기는 한편 자신의 사업체도 모친의 명의로 돌린 뒤 종적을 감췄다.

벨을 눌렀더니 한 남성이 나왔다. 그는 "A씨를 모른다. 그저 순수한 세입자일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A씨의 매형으로 집에는 A씨의 모친도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엔 "아무 관계없다"며 딱 잡아떼던 매형은 A씨의 행방을 묻자 "A는 일산에 산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한다"며 말 바꾸기를 계속했다.

결국 A씨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조사관들은 "기분 나쁘다며 침을 뱉는 사람, 문신을 보여주며 협박을 하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라며 "저 정도면 양반"이라고 했다.

다음 행선지는 강남구 압구정동의 모 아파트. 서울 모 백화점 명품관에도 매장을 가지고 있는 의류수입업자로 6000만 원 가량의 세금이 밀려있는 고액체납자 B씨를 만나러 갔다.

B씨 역시 집에 없었지만 그가 자기소유 부동산에 근저당을 설정해 3억 원 가량을 빌린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최근 벤츠 차량도 렌트했다.

B씨에게 전화를 걸어 "빌린 돈을 세금 안내고 어디에 썼냐"고 추궁하자 그는 "매장 인테리어 비용으로 썼다. 환율 때문에 어려운데 이럴 때에는 나라에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꾸했다. 세금도 못 내면서 무슨 벤츠냐고 묻자 "사업상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사관들의 입에선 한숨이 나왔다. "빌린 돈 3억의 10%만 세금으로 냈어도 체납금 반을 갚을 수 있는데…."

이번엔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지난해 가재도구 등을 압류 조치했던 전직 교수 C씨가 사는 종로구 평창동을 찾았다. C씨 부인 명의로 되어 있는 집과 미술관은 한눈에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술관에 들어가 C씨의 행방을 물었다. "부부동반으로 제주도에 여행 가셨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현재 1억 9000만 원을 체납하고 있다.

기동팀은 "고액세금체납자들에게 동산 압류, 출입국 금지, 체납 정보 등록 등 조치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가족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은 체납자들은 별 영향 없이 편하게 지낸다"며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서울시는 홈페이지에 고액체납자 명단도 공개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 동산을 제외한 부동산은 압류할 수 없게 돼 있어 명의를 바꿔놓고 '버티기'로 들어가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

다음은 2006년 3억 원 가량을 체납한 D씨의 성북동 주택. D씨는 약 50억 원 상당의 주택을 소유하고 현재도 사업을 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세금 납부를 미뤄왔다.

그의 주택은 지하 주차장에서 집 내부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등 호화롭기 그지없는 고급 저택이었다.

D씨는 기동팀에게 "그동안 재산에 가처분이 많이 걸려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었다"며 "집이 팔리는 대로 세금을 완납하겠다"고 약속을 되풀이했다.

결국 다시 한 번 기한을 연기해주고 집을 나섰다.

조사관들은 "고액체납자들 상당수는 자신의 사업이나 체면이 우선이고 세금은 뒷전이다. 그런 의식이야말로 성실납세자와 고액체납자와의 가장 큰 차이"라며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현장을 찾아 체납자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윤정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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