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없는 ‘절대 종신형’ 새로운 논란의 시작?

  • 입력 2009년 2월 10일 10시 09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높다란 담장 안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좌) 정남규(우) 등 사형수 15명가량이 독거실에 수감돼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높다란 담장 안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좌) 정남규(우) 등 사형수 15명가량이 독거실에 수감돼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사형제 찬성론자도 폐지론자도 모두 불만.’

사형제는 그대로 두되 감형이나 가석방, 사면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종신형’ 제도의 도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에서는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와는 별도로 흉악범을 평생 감옥에 가둬 놓는 절대적인 종신형을 도입하도록 형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통 사형제도의 대안으로 거론돼온 절대적인 종신제를 사형제도와 함께 우리 형법에 도입하자는 것이다. 무기징역형의 경우 복역한지 10년 쯤 지나면 감형이 이뤄지는 등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에 감형 없는 종신형을 넣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법률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장윤석 제1정조위원장은 9일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절대적인 종신형제의 도입은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을 받아들이면서 사형제도 폐지론자의 주장도 수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아닷컴에서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사형 폐지-존치론자를 막론하고 이 방안에 대해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절대적 종신제 도입은 단지 사형제 존폐 논란을 피하겠다는 편법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연쇄 살인범 등 흉악범의 경우 사실상 사형제 폐지 효과가 날 것을 우려했다.

동국대 김상겸 교수는 “연쇄 살인범의 경우 사형을 집행해야지, 법이라는 것이 평온한 인간들의 생명을 보호하자고 만든 게 아닌가”라며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최근 11년간 그 이전보다 살인 범죄가 30% 이상 증가했다. 절대적인 종신형 도입은 사형제 존폐 논의만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절대적인 종신제의 도입은 현재 우리나라의 감형 가능성을 규정한 현행 형벌 체계와도 맞지 않고, 국민 감정상 수긍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 현행법상 사형이든 무기징역이든 감형 가능성이 있다. 사형을 선고한 경우 30년간 그 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사문화 되고 무기징역수는 10년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를 받는다. 그는 “국가가 흉악범을 평생 먹여 살리는 일도 국민 법 감정상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절대적 종신제를 채택한 국가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형폐지 측에서는 사형제를 그대로 놔두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 해외에서는 사형제를 없애고 난 다음의 대안으로 종신형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동아대 허일태 교수는 “사형은 본질적 인권 침해를 금지하는 우리 헌법과도 맞지 않고 사형제도가 범죄 발생 억제력이 있다는 증거도 없다”며 “대부분의 살인행위가 우발적으로 범해지는 상황에서 살인자라고 해서 언제나 사형에 처한 것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라며 선(先) 사형제 폐지-후(後) 종신제 도입을 강조했다.

허 교수는 “IMF 이후 살인 사건이 늘었다고는 하나 이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제 사정이 안 좋아져서 이다”라며 “국가는 형벌에만 관심을 쏟을 것이 아니라 범죄를 막는 사회 방어 체계를 강화와 범죄 피해자를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윤석 위원장은 “사형과 종신형이 절대 양립 불가능한 형벌은 아니지 않나. 미국에서도 사형과 종신형이 함께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절대적인 종신형이 추가되면 흉악범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고, 법관에게도 판결 시 선택 여지를 줘 사형 선고를 하는 일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오는 12일 법무부, 행정안전부, 경찰청과 절대적 종신제 도입을 놓고 당정협의를 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말 23명이 한꺼번에 사형에 처해진 이후 10년이 넘도록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가 됐다. 그러나 이번 강호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국민들은 사형제 폐지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흉악범을 빨리 사형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도 상당하다. 그렇다고 다시 사형을 재개하기도 국제적 정치적 부담이 크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 새로운 형벌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의 사형제를 개선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사형은 형법ㆍ군형법뿐만 아니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한국조폐공사법, 항공법, 원자력법 등 모두 21개 법률, 113개 조항에서 법정 최고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형사정책연구원 강석구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대상을 ‘인명침해’를 야기한 범죄 등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형 방법도 교수형 이외에 가스나 독극물 주사 등 신체훼손이 덜 한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이철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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