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논증의 근거는 양보다 질!

  • 입력 2009년 1월 12일 02시 59분


글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준 중 공정성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중요성이 무엇인지 검토해 봄으로써 비판적 평가의 2단계에 대한 접근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을 왜곡할 경우와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선택해 논의할 경우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사실이 아닌 추측이나 예측한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공정성의 기준에 의해 비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논증할 때 추측이나 예측한 내용을 근거로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면서 “만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실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고, 결국 네가 하고 싶은 의미 있고 좋은 직업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평생 보람을 느끼지 못하며 불행하게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미래에 대한 예측과 추측을 근거로 제시하는 셈입니다.

이 경우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추측이나 예측을 제시해야 객관적이고 공정한 논의가 됩니다. 주장하는 사람에게만 유리한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추측일 경우에는 비판해야 합니다.

다음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뇌와 척추에 이상이 있는 워낙 심각한 기형이라서 수술을 안 하면 한두 달 정도 밖에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15년 이상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장애가 심하다 보니 수술을 받더라도 일반 사람처럼 생활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식을 완전히 가질 수도 없으며, 휠체어에 앉거나 누운 채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의사는 부모에게 수술을 할지 아니면 아이를 포기할지 선택을 요구했는데 부모는 수술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 경우 부모의 결정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일종의 안락사 문제를 다루는 이 쟁점에 대해 부모의 결정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해봅시다. 수술을 할 경우에 어떻게 될 것인지 추측하고 예측해서 이를 근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만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고 해봅시다. 수술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아이의 경우 부모가 24시간 돌봐주어야 할 것이므로 부모가 엄청나게 고생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비용도 상당히 많이 지출될 것이다.

처음에는 견디겠지만 이런 생활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부부는 피곤해지고 지쳐서 행복하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계속 갈등이 일어나고 점점 사이가 나빠져 결국 이혼하고 말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이에 대한 관리도 소홀해져서 아이는 결국 사망할 것이다.

그러면 남자는 슬픔에 젖어 홀로 외롭게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여자는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하고 말 것이다. 아이를 포기한 부모의 결정은 결국 이러한 파국과 불행을 사전에 막은 것이므로 정당화될 수 있다.

이 예측은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유리한 내용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지 못한,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추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기를 경우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겠지만 꼭 이렇게 최악의 상황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혼한다는 보장도 없고, 더군다나 자살한다는 것도 근거 없는 추측입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자의적인 추측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본질상 이와 유사한 경우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편향된 추측과 예측을 제시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공정성이란 기준의 예리한 칼날을 활용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준은 중요성입니다. 아무리 적절하고 공정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한다 해도 사소한 내용만 담고 있다면 역시 비판해야 합니다. 중요한 쟁점을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며 논의하고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합니다.

우선 중요한 문제를 쟁점으로 삼고 있는지부터 평가해야 합니다. 공력과 시간을 들여 논의했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면 허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관점과 처지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초등학교 출석부에 남학생 이름이 먼저 나오고 여학생 이름이 나중에 나오는 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자가 먼저라는 인상을 심어주어 양성평등 의식을 갖게 하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실제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더 중요한 사안이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앞서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때 겪는 취업 불평등이나 승진에서 겪는 불이익을 더 우선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똑같이 중요성이란 기준을 적용한 경우입니다.

제시된 근거를 평가할 때도 중요성의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많은 수의 근거를 제시할수록 설득력이 커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근거만 나열하면 논증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근거가 없을 경우 상대방은 승복하지 않습니다. 결국 근거를 제시할 때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며 양보다는 질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근거를 제시했는지 평가해야 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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