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언어 기능 ‘소통의 효율’뿐일까

  • 입력 2009년 1월 12일 02시 59분


국제화시대에 쇠멸하지 않으려면 영어를 공용어로?

○ 생각의 시작

모두 알다시피 표준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규범 중 하나이다. 그래서 표준어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 기호는 사회적인 약속, 다시 말해 계약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언어 사회가 약속을 통일해야 하고, 언중(言衆)은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언어 기호는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안전 운행을 위해 도로 교통법이 있듯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에는 규범이 있다. 국어에도 이러한 여러 가지 규범이 있다.

[지학사 ‘국어생활’ 중]』

사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익혀 온 사투리를 고집한다면 효율적인 의미 전달이 어려울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도 있다.

수색 중인 부대가 있었다.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중, 소대장은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적을 발견했다. 상황이 다급함을 깨달은 소대장은 부하들에게 외쳤다. “쑤그리(엎드려라).” 이 말을 못 알아들은 부하 몇은 크게 다치고 말았다. 소대장은 부하들이 사투리를 못 알아들은 것을 깨닫고는 다음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같은 상황이 또 벌어졌고, 이번에는 소대장이 다르게 외쳤다. “아까 맹키로(이전처럼).”

○ 확장된 생각

중심어만이 훌륭하다는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주장도 펼쳐질 수 있다.

『국제어가 된 영어가 가까운 미래에 세계어가 되어 온 세계가 영어만을 쓰고 다른 민족어들은 모두 쇠멸하리라는 전망, 영어를 잘 쓰지 못해서 우리 시민들과 사회가 보는 엄청난 손해, 사람의 뇌에서 첫 언어를 배우는 부분과 차후 언어들을 배우는 부분이 다르므로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국제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쓸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국어는 그가 태어날 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된다는 사정 따위 조건들을 고려하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책은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이다. 다른 조치들은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복거일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중]』

효율성이란 결국 ‘어느 것이 더 이익인가’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소통의 효율이 우리에게 이익을 주므로 영어를 우리의 공용어로 삼자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견해는 또 어떤가?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라는 시구에서는 또 어떠한가? ‘파르라니’라는 말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우리 민족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깔끔하게 자른 여승의 머리 위로 별빛이 비추는, 그래서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대한 느낌이 ‘파르라니’라는 말로 아주 정확하게 표현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장윤희 ‘재미가 깨를 볶는 이야기’ 중]』

○ 여러 생각을 열어 놓으며…

소통은 인간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불완전한 소통이 수많은 오해와 그로 인한 불화를 부른다. 그러나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사고가 풍부한 의미 전달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 장점은 또한 단점이기도 한 것이다. 생물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의 건강을 지켜 주듯이 다양한 표현이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두 글을 보자.

『㈎ 왜 우리는 위험에 처한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언어적 다양성은 인류가 지닌 언어 능력의 범위를 보여 준다. 언어는 인간의 역사와 지리를 담고 있으므로 한 언어가 소멸한다는 것은 역사적 문서를 소장한 도서관 하나가 통째로 불타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또 언어는 한 문화에서 시, 이야기, 노래가 존재하는 기반이 되므로, 언어의 소멸이 계속되어 소수의 주류 언어만 살아남는다면 이는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까지 해치는 셈이 된다.

[2007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지문 중]

㈏ “대관절 월매짜리 고기간디 그려.” / “마리당 팔십만 원쓱 주구 가져왔댜.” / “웬놈으 잉어가 사람버덤 비싸다댜.” / “보통 것은 아닐러먼 그려. 뱉어낸벤또(베토벤)라나 뭬라나를 틀어 주면 또 그 가락대루 따라서 허구, …” 이문구 님의 ‘유자소전’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대화이다. 이것을 표준어로 바꾸면 의미는 더 쉽게 통하겠지만 인물의 심리나 투박함을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근의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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