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방화? 야전병원 시체유기? ‘대학로 유해’ 미스터리

  • 입력 2008년 12월 26일 14시 40분


서울 대학로 한 복판 지하공간에서 발견된 14구의 유해 출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자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대형 방화와 시체유기가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옛 한국국제협력단(KOICA)자리에서 백골 상태의 유해 14구가 발견됐다. 이 유해들은 유아에서부터 50대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해들은 한국국제협력단이 경기 성남시로 옮겨 감에 따라 건물 철거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발견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지만 워낙 오래된 유해들이어서 감식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해의 성격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유해의 두개골이 예리하게 절단된 흔적이 있고 유해들에게서 약품처리한 성분이 검출됐다”며 이 유해들이 인근에 있던 서울대 의대에서 해부 실습용으로 쓰인 뒤 버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1948년부터 모든 해부 실습 일지를 검토한 결과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반 해부용 시신은 기증을 받고 공문에 따라 해부용으로 쓰이며 이후 화장하는 등 엄격한 절차에 따라 처리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인에 대한 인격모독 등의 시비가 걸릴 수 있다.

한편 유해가 발견된 곳은 한국국제협력단 이전에 1965년 해외개발공사 건물이 있던 자리. 유해들은 건물 밑에 있던 토굴형태의 공간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현지 주민들은 1950년 한국전쟁당시 인민군들의 방화 및 시체 유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1세 때부터 이 곳에서 성장해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초등학교를 이 곳에서 다녔다는 백구현(65)씨는 26일 동아닷컴을 통해 “인민군에게 빼앗겼던 서울을 다시 찾았던 1950년 9.28 서울 수복 당시 인민군들이 이 곳의 모든 창고를 불태웠으며 많은 시체들이 버려졌다”고 증언했다.

백씨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이 곳은 야전병원과 인민군들의 군수창고로 쓰였다. 서둘러 철수할 때 남아 있는 쌀 등을 제대로 싣고 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인민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군수물자를 넘기지 않기 위해) 창고에 불을 질렀고 이 일대가 모두 잿더미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불길이 엄청났지만 주민들이 쌀 한 톨이라도 건지고 물자를 꺼내오기 위해 이 일대를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인민군들은 오후 3시경 불을 지르고 인근 미아리고개로 철수했다는 것이 백씨의 기억.

이 같은 백씨의 주장은 유해 발굴 초기의 현장 상황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경찰은 처음 토굴 형태의 장소에서 유해를 발굴했을 때 굴 안쪽이 그을려 있었다고 밝혔었다.

이 곳은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있었던 자리였다. 1946년에는 서울대의대 제1부속병원이 들어섰다.

백씨는 곧이어 “인민군들이 서울로 쳐들어왔을 때 온갖 환자들을 이 곳 병원에 실어왔다. 국군이 서둘러 철수할 때 인민군들이 병원을 접수해 많은 부상자들이 그대로 죽었다. 인민군들은 시체들을 인근 사방 팔방에 닥치는 대로 버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백씨는 이후 다시 한번 시체의 대량유기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중공군들이 쳐들어와 한국군이 다시 물러나게 된 1951년 1.4 후퇴 때 또다시 병원에 있던 시체들이 대량으로 버려졌다. 이 때 현 서울대 병원 영안실 근처 구덩이에 시체가 대량으로 묻혔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노인 김모(73)씨도 “혜화동 일대에 토굴이 있었고 인민군들이 시체를 대량으로 묻었다는 소문이 전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백씨는 그러나 1.4 후퇴 때 시체를 버린 측이 한국군이었는지 인민군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백씨는 또 이 일대 가구들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방공호를 팠다고 전했다. 백씨 자신의 집에서도 마루 밑에 방공호를 팠으며 자신도 이 곳으로 대피한 적이 있었다고. 이에 따라 이번에 유해가 발견 된 곳도 민간인들이 자체적으로 판 방공호 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렇게 여기 저기 파 놓은 방공호에 인민군들이 시체를 버렸을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씨는 한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 번에 유해가 발굴된 바로 그 장소에는 한국전 이전에서부터 무언가 정체불명의 건물이 있었으며 늘 경찰과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는 것. 일제시대부터 자리한 병원건물도 근처에 있었지만 최근 유해가 발굴된 바로 그 장소에는 다른 건물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늘 군경이 지키고 있어서 그 건물의 정체를 백씨도 알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백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정체불명의 건물이 무엇인지, 그 건물의 성격을 밝히는 것도 유해의 성격을 추정하는데 또 다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