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은 허리띠 졸라매는데… 정부 재정 곳곳 샌다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예산 삭감-폐기’ 판정 14개사업 되레 증액

정부가 지난해 성과가 부진했던 각 부처의 일부 부실 사업에 대해 예산을 늘리는 등 ‘예산 삭감’ 지침을 어기며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9년도 예산안’과 기획재정부의 ‘2007년 정부 사업 평가 결과’를 비교 분석한 결과 지난해 ‘미흡’(90개) 또는 ‘매우 미흡’(14개) 판정을 받은 104개 사업 중 32.7%인 34개 사업이 지침대로 예산을 삭감하지 않은 채 내년 예산안에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예산안 편성 지침에 따르면 각 부처의 전년도 사업성과를 평가해 ‘미흡’(50∼59점)이나 ‘매우 미흡’(50점 미만) 평가를 받은 경우 다음해 예산 편성 때 10% 이상 삭감하거나 사업을 아예 폐기하도록 돼 있다.

지난해 평가에서 미흡 이하 판정을 받은 사업 중 예산이 증액된 사업은 14개였다. 또 4개 사업은 올해와 같은 규모의 예산이 편성됐으며 나머지 16개 사업도 10% 미만 삭감됐다.

통일부의 ‘민족공동체 회복 지원 사업’은 미흡(57.5점) 판정을 받았지만 내년 예산은 3520억 원으로 올해(1974억 원)보다 78% 늘어 증액 규모가 가장 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 기여한 바가 불분명해 미흡 판정을 받았지만 국제 곡물가격이 올라 예산이 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행정안전부의 ‘소도읍 육성 사업’도 미흡(52점) 판정을 받았지만 내년 예산은 551억 원으로 올해 464억 원보다 18.8% 증액 편성됐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친환경축산지원’ 사업은 ‘예산이 다 사용되지 않았고 사후 관리도 미흡했다’는 이유로 미흡(52.3점) 판정을 받았지만 내년 예산은 올해(348억 원)보다 80.3%나 늘어난 628억 원으로 편성됐다.

이 밖에 국방부의 ‘과학화훈련’, 청소년위원회의 ‘우주체험센터 조성’, 국토해양부의 ‘항만건설 민자 유치 및 글로벌 기업 유치’, 기상청의 ‘지상 기상관측망 확충’, 보건복지부의 ‘부랑인 지원’ 사업 등이 미흡 판정에도 불구하고 내년 예산이 증액됐다.

이들 사업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다시 심사를 받지만 일부 사업은 의원들의 지역구 이해가 걸려 있어 삭감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여윳돈 쌓인 공기업에도 ‘습관성 재정지원’

내년 지원금 총 32조… 부채율 16%인 수자원公에 251억 보조

기존 출자금 2000억 정기예금 든 농촌公에 100억 추가 지원

정부가 여유자금이 많은 공기업에도 습관적으로 재정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일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예산 지원의 적정성 분석’ 보고서에서 내년에 302개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금은 32조3914억 원으로 올해(26조3897억 원)보다 22.7%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공공기관 중 한국수자원공사의 경우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흐름이 연평균 6219억 원이나 되고 부채비율이 16%(작년 말 현재)에 불과한데도 정부는 내년에 251억 원을 신규 출자하기로 했다.

이 보고서는 “수자원공사의 최근 4년간 연평균 시설투자금은 6422억 원으로 자체 수익으로 재투자가 가능하지만 정부가 매년 신규 출자를 통해 사업비를 보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촌공사는 정부가 수익사업 발굴에 쓰라고 2000억 원을 출자했지만 사용처를 찾지 못해 그대로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에 100억 원을 새로 출자한다.

환경관리공단은 정부가 독점권을 부여한 폐수종말처리시설 운영, 하수도 확충 사업 등으로 지난해 76억 원의 당기순이익이 났지만 내년에 정부 출연금으로 114억 원을 받을 예정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도 국가 도메인 사업을 독점하면서 지난해 순익이 22억 원 나는 등 매년 늘고 있지만 내년에 151억 원의 보조금이 추가 투입된다.

이 밖에 대한주택보증(3조7500억 원) 한국마사회(6300억 원) 한국공항공사(2000억 원) 등은 대규모 금융자산을 갖고 있지만 정부가 이를 회수하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재정에 손실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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