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학교 공부스타/구미 도송중 2년 백형인 군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3시 48분


학원서도 포기한 문제학생이 전교 1등 ‘기적’… “하면 된다”

‘반 35명 중 33등.’

백영수(40) 씨는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의 첫 성적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노는 거 좋아하는 아들이니 성적이 좋지 않으리란 건 알았지만 뒤에서 등수를 세는 게 더 빠를 줄은 몰랐다. 대입 학원 원장인 백 씨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을 통감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백 씨는 건강이 크게 나빠져서 수술을 받고 학원 운영을 그만 뒀다. 그때서야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백 씨는 몸을 회복하는 동안 아들의 ‘공부 코치’가 되기로 결심했다. 백형인(14·경북 구미 도송중 2년·사진) 군은 아버지 덕분에 점차 성적이 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 33등에서 반 10등,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15등으로 올라섰다. 올해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전교 1등’이란 숙원을 달성했다.

○ Before: 학원에서도 쫓겨난 산만한 아이

어린 시절 유난히 산만했던 백 군은 유치원조차 끝까지 다니지 못했다. 얌전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게 싫어서 그만둬 버렸다. 유치원 대신 보낸 영어학원에서는 한 달 만에 학부모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아드님이 너무 산만해서 다른 애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백 씨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수업시간에 교실을 돌아다니고, 주변 아이들이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떠든다는 게 이유였다. 학원에서조차 한 달 만에 쫓겨난 셈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교내 축구 선수로 뛰면서 공부와 거리가 한층 멀어졌다. 오로지 축구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던 백 군은 체육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이런 백 군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시킨 일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는 “아버지가 독서하라, 신문을 읽으라고 했을 때는 적응이 안 돼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공부를 해야 한다면 축구하듯 즐겁게 하자고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공부가 정말 재미있어진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성적이 차곡차곡 오르는 것이 즐거워졌다. 백 군의 책상 위에는 지금도 이런 좌우명이 붙어 있다.

‘강제로 하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 After: 학원 도움 없이 전교 1등

학교 수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백 씨는 아들의 공부를 지도할 때 ‘교과서, 책, 신문을 활용한 자기주도학습’을 원칙으로 삼았다.

매일 저녁 한 시간씩 하는 ‘교과서 학습’은 월요일 국어, 화요일 과학, 수요일 사회 등 요일별로 영어, 수학을 제외한 과목을 정해두고 하루에 해당 과목의 교과서를 한 단원씩 세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처음 읽을 때는 그냥 훑어가며 읽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모르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며 읽은 후 전자사전에서 뜻을 찾아 쓰고, 세 번째 읽을 때는 내가 교사라면 어떤 부분에서 시험을 낼지 핵심을 찾아서 노트에 정리해둔다. 이런 식으로 방학 때 한 학기 분량의 교과서를 선행학습 했다.

학기 중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읽되, 두 번째 읽고 난 뒤 노트를 반으로 접어 한쪽에는 요약을 하고, 한쪽에는 핵심 단어를 적어서 핵심 단어만 보고도 요약한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해봤다(그래픽). 수업을 하듯 화이트보드 위에 쓰면서 혼자 설명을 하니 한층 재미있어졌다. 시험공부는 2주 전에야 시작한다. 과목마다 보통 세 권의 문제집을 풀지만, 평소에 교과서 내용을 미리 암기해뒀기 때문에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된다.

초등학교 때는 ‘교과연계 독서’가 성적을 올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백 씨는 인터넷을 통해서 각 과목의 단원과 연계된 책들을 다 파악해서 아들에게 읽혔다. 교과연계 독서를 하면서부터 백 군은 학교 수업에 적극적이 됐다. 배경지식을 미리 알고 가는 셈이라 교과서 내용이 쉽게 느껴졌고, 발표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다. 반장도 도맡아 하게 됐다.

백 씨는 아내와 함께 독서지도사 과정을 수강해 배운 내용을 하나씩 실천해나갔다. 일단 집에서 텔레비전부터 없앴다. 대신 책장을 비워놓고 엄마 칸, 아빠 칸, 아이 칸을 정해둔 다음 각자 읽은 책을 꽂으며 누가 많이 읽는지 경쟁을 했다. 매달 각자 1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한 달 동안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다른 두 사람이 소원을 들어줬다. 백 군은 자주 일등을 해서 신발, 가방 등 갖고 싶은 것들을 받았다.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각자 읽은 책에 대한 감상문도 올렸다. 간서치(‘책벌레’라는 뜻·아버지), 중전(어머니), 초 프로(백 군) 등 각자 별명을 정해 자신만의 ‘서재’(게시판)를 만들고 읽은 책에 대한 감상문을 썼다. 백 군이 쓴 글에는 부부가 엄청난 분량의 응원성 댓글을 달았다. 백 군은 중학생이 된 지금도 하루에 30분씩 책을 읽고 내용을 400∼500자로 요약해보는 ‘독서일기’를 쓰고 있다.

백 씨는 매일 아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아들이 식탁에 앉으면 40분 정도 신문을 같이 읽으며 대화를 나눈다. 백 군은 아침에 읽은 사설 중 하나를 오려서 매일 저녁 30분씩 ‘신문 일기’를 쓴다. 신문 일기는 사설을 오려 붙이고 새로운 어휘와 뜻, 200∼300자 정도의 내용 요약, 자신의 견해를 적어보는 것이다.

민사고가 목표인 백 군은 요즘 내신 상위 1% 이내에 드는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수학 공부방에서 과외를 받고 있다. 일곱 살 때 쫓겨난 영어학원 이후로는 처음 받아보는 사교육이다. 반면, 백 군의 반에는 학원에 다니는 친구가 90% 이상이다. 대부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따라 대형 학원 종합반에 다닌다. 그러나 백 군은 자신의 자율적인 공부방법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특목고에 가면 어차피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데 그걸 미리 배운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어른스러운 이유도 덧붙였다.

백 군은 올해 7월에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선언문을 만들어 책상 앞에 붙여뒀다. ‘중학교 2학년 내에 전교 1등을 한다’는 1번 목표는 벌써 성취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민사고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하는 것, 검사가 되는 것, 최종적으로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국제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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