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학부모는 알고 싶다

  • 입력 2008년 9월 18일 22시 54분


미국 학교들은 요즘 학생 성적 올리기에 안달이 나 있다. 시카고의 20개 공립고는 신입생을 상대로 5주마다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체육과목 시험을 치러 A학점을 받을 경우 50달러, B학점은 35달러, C학점은 20달러를 지급한다. 절반은 현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적립했다가 졸업 때 지급하는데 전 과목 A학점을 받은 학생은 2학년 말이 되면 4000달러를 모을 수 있다고 한다.

타성에 젖은 미국 수도의 교육을 확 뒤집어 놓은 한인 출신 미셸 리(38) 워싱턴 교육감도 중학생의 수업 참여를 높이기 위해 현금 격려금을 나눠준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지각 안 하고, 숙제 잘하고, 높은 성적을 올리는지를 평가해 1점에 2달러씩 1인당 월 100달러까지 보상금을 격주마다 은행 계좌로 입금해준다는 것이다.

두 사례는 저소득층 출신이 대부분인 공립학교 학생들이 자퇴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도록 붙잡아 두기 위한 고육책 중의 하나다. 잘 가르치는 교사에게는 성과급을 더 준다. 당연히 “성적을 미끼로 학생에게 뇌물을 주느냐” “공부가 직업이냐”는 비판이 많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다운 발상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교육부나 지역교육청 홈페이지에서 학교 이름만 치면 학교별 학업성취도 등 각종 학교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어 큰 비밀이 아니다. 학교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발표되면 지역 신문은 여러 면을 할애해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부동산소개업소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벽에는 관내 학교의 학업성취도 자료가 붙어 있다. 자녀가 다닐 학교가 어떤지 알고 집을 고르라는 뜻이다.

미국의 사례가 모두 바람직하다거나 국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니지만 학교의 실상에 대한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우리의 교육 현실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원평가제 도입, 학업성취도와 교원단체·노조 가입 현황 등을 학교 홈페이지에 싣도록 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정보도 제한적으로나마 공개할 방침이지만 교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학부모의 알 권리보다는 조직 논리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대부분 ‘전교조 죽이기’로 규정하고 하반기에 강력한 투쟁을 벌일 태세다. 노조 가입 현황을 공개하라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주장하지만 거꾸로 교원평가제를 하지 않는 선진국이 어디 있는가.

동아일보가 전국 초중고교별 교원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교조 가입 현황을 18일 보도하자 본보 홈페이지는 엄청난 접속 건수를 기록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 학교의 교사들은 어떤 단체에 많이 가입했는지 확인하고, 고교들은 학생들의 진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정보 하나에 교육수요자인 학부모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학교정보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학부모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니 하는 교원단체나 교육운동가들의 거창한 구호보다는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가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는지, 교원의 자질은 어떤지, 대학에는 몇 명이나 보내는지 등을 알고 싶을 뿐이다. 교원단체들이 이런 관심마저 의식이 없는 ‘이기적 학부모’로 매도하거나 정부의 정치적 음모로 치부한다면 학부모들은 더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인철 교육생활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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