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현대重-현대車 노사관계 14년의 명암

  • 입력 2008년 7월 25일 02시 59분


#1994년 7월 말 울산의 한 식당.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던 고(故)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 임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노조의 파업에 직장폐쇄로 맞서던 현대중공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현대차는 그해 분규가 없었다.

그때 현대중공업 총무부장이 정 회장에게 결재를 받기 위해 식당에 들어섰다.

정 회장은 “너희들은 왜 현대자동차만큼 노무관리를 못하느냐”고 질책했다. 같은 그룹의 다른 회사 임원들 면전에서 10여 분간 꾸지람을 들은 이 총무부장은 식당을 나서면서 ‘반드시 노사 화합을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23일 오후 4시 반경 현대중공업 사내(社內)체육관.

오종쇄 노조 위원장이 “임단협 합의안이 64.2%의 찬성으로 가결됐다”며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렸다. 옆에 있던 조합원들과 회사 관계자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1995년 이후 14년 연속 무분규를 달성한 순간이었다.

1987년 7월 노조 설립 이후 128일간의 파업과 골리앗 크레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점거 농성…. 현대중공업 노조의 ‘화려한’ 투쟁사다. 오 위원장도 강성으로 회사와 공안 당국의 ‘집중 관리 대상’ 5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런 현대중공업이 1995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고 노조에 경영상태를 수시로 설명하는 등 신뢰를 쌓아 갔다.

노조도 ‘선진복지노조 건설’을 내걸고 합리적인 노동운동으로 전환했다. 노조위원장이 회사의 해외 영업활동에 동행하기도 했다. 2004년 9월에는 근로자 분신 사태에 대한 마찰로 민주노총이 제명하자 재심을 청구하지 않고 탈퇴했다. 민주노총에 납부하던 연맹비(연간 5억 원) 가운데 일부는 장학금과 불우 노인 생활비로 지급하고 있다. 내년 중 노조 적립금(100억 원) 가운데 50억 원으로 울산 인근에 휴양소도 지을 계획이다.

반면 정 회장에게 칭찬을 들었던 현대자동차는 1995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분규에 시달리고 있다. 노조는 2006년 6월 금속산별노조에 가입한 뒤 노동계의 ‘정치성 파업’에 앞장섰고, 이에 앞서 회사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경영난’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해 직원들에게 불신을 키웠다.

정 회장에게 질책을 받았던 총무부장은 현재 울산시 도시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인 신명선(63) 씨. 신 사장은 ‘친정’의 무분규 타결 소식에 “현대중공업은 선박 건조기술뿐만 아니라 노사관계도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울산에서

정재락 사회부 jr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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