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악화속 임시-일용직들이 내몰리고 있다

  • 입력 2008년 7월 14일 19시 57분


#1. 용접공 노경천(53) 씨는 건설 현장에서 하루벌이로 사는 일용직이다. 하루 용접하고 받는 일당이 평균 12만 원. 경기가 좋을 때는 한달에 300만 원도 벌었지만 최근에는 일거리를 못 찾았다.

노씨는 "군소 건설회사 사장들이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곤 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5일도 채 일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방세를 내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다"고 한숨을 지었다.

#2. 노씨가 애타게 연락을 기다리는 건설사 사장 명단 중에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부성건설 장용석(50) 사장도 들어 있다. 하지만 장 사장도 큰 건설사로부터 일감을 수주하지 못해 힘든 상황. 지난달 20일 공사대금으로 2300만 원을 받긴 했지만 자재비, 운임, 인건비를 빼고 나니 겨우 139만5000원만 남았다. 계약을 따내려 군소업체들끼리 '출혈 경쟁'을 하다보니 빚만 늘었다.

경기 불황으로 임시직과 일용직 일자리가 크게 줄면서 이들 직종에 종사하던 서민의 삶이 급격히 불안해지고 있다.

물가급등→내수 위축→건설, 숙박, 음식점업 등 경기민감 업종의 침체→관련 일자리 감소→소비 여력 감소'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면서 사회적 안전망에 들어있지 않는 이들 서민들의 삶이 고단해지고 있는 것이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임시직 및 일용직 근로자 수는 지난해 5월에 비해 16만7000 명 줄었다. 임시직은 8개월 연속 줄고 있고, 일용직은 4개월째 감소세다.

●임시·일용직이 구조조정 1순위

경기가 불황에 들어가면 서민들이 타격을 받는 것은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고유가와 물가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비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임시직과 일용직 일자리를 먼저 줄이기 때문이다. 임시·일용직은 근로계약 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정해져 있지 않아 정규직이나 상용직에 비해 해고가 쉽다.

전체 업종 가운에 건설, 숙박, 음식점업에 종사하는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비중이 가장 많다. 따라서 최근 이 3개 업종에서 임시·일용직 일자리의 퇴출 규모가 가장 크다.

일용직을 덜 고용해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은 부성건설 장 사장에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원자재 값이 폭등하는데 공사비는 오르지 않는 상황"이라며 "인건비라도 절약하지 않으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건설자재 값은 작년보다 2배 가까이 올랐다. 예컨대 작년 9월 67만 원 하던 H형강은 지금 123만 원에 거래된다. 10개월 만에 84%나 치솟은 것. 같은 기간 원형 봉강 가격도 62만 원에서 122만 원으로 뛰었다.

●"밥도 못 챙겨 먹을 판"

임시직과 일용직이 줄면서 당장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람도 적지 않다.

노 씨도 그렇다. 그의 지난 달 총 수입은 84만 원. 교통비, 통신비, 월세 등을 내고 난 뒤 손에 쥔 돈은 19만4120 원. 1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46만3000원)의 42% 수준밖에 안 된다.

저녁을 소주로 때울 때가 많다는 그는 "이 바닥에서 밥 꼬박 꼬박 챙겨먹는 사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임시직과 일용직 감소세는 최근 건설업에서 음식점과 숙박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불황으로 문을 닫는 식당과 여관이 많아지면서 관련 일자리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서울 대치동 S 고깃집에서 일용직 찬모로 일하던 양선미 씨(가명·48)도 지난달 10일 1년 이상 일해 온 식당에서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음식점 매출이 줄어 기존의 직원 수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게 식당 주인의 해고 사유였다. 양씨는 그 뒤 매일 구인광고 전단지를 보고 있지만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올해 들어 매달 900개 정도의 업소가 폐업신고를 하고 있다"며 "전체 음식점 수가 줄면서 음식점업의 고용 여력이 줄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숙박업계 사정도 비슷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만 모텔 여관 등 숙박업소는 116개나 줄었다. 숙박업중앙회 측은 "경기침체와 유가 상승으로 숙박업 운영 자체가 어려워져 40% 이상 방을 채우는 곳이 많지 않다"며 "투숙객마저 줄어 숙박업계는 고용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조금으로 일용직 보호할 필요"

경기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임시직 및 일용직 근로자는 퇴출 후 생활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 일을 할 때도 고용계약을 서면으로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주방 일을 하다가 해고된 한선희(가명·57)는 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보험센터에 전화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이 안 돼 있어 도와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기변동에 취약한 저소득 근로자들이 경기하강 국면이 올 때 마다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며 "정부는 영세 사업장들도 사회보험에 가입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고용보조금을 지급해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선기자 ks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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