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大盜’ 활개… 피해자는 쉬쉬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30대 빈집털이 49차례 걸쳐 100억 훔쳐

외제차 몰고 내연녀와 골프 ‘호화 생활’

피해자 절반은 “도난 몰랐다” 신고 안해

서울 강남지역의 고급 아파트와 빌라를 돌며 100억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30대 전문 절도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일부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범인이 “강남의 한 집에서 훔쳐 여자친구에게 선물했다”고 진술한 시가 수천만 원짜리 2.8캐럿 다이아몬드는 경찰에 도난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절도 혐의로 1일 구속된 김모(39) 씨에 대한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강남지역 전문 절도범=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서울 강남지역의 고급 주택만을 전문적으로 털어왔다.

2005년 강남의 빈집을 털다 구속돼 1년을 복역하고 2006년 5월 출소한 김 씨는 출소 후 넉 달 만에 다시 강남 고급 주택의 담을 넘었다.

절도 전과만 7범인 김 씨는 2006년 9월 강남구 논현동 박모(41) 씨의 빌라에서 캠코더 반지 목걸이 등 수백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절도 행각에 나섰다.

김 씨는 올해 1월 강남구 삼성동 문모(48) 씨 집의 베란다 창문을 열고 들어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포함해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는 등 지난달까지 강남지역에서만 49차례에 걸쳐 금품을 훔쳤다.

김 씨는 경찰에서 “강남에는 잘사는 집이 많아 한 번 훔칠 때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는 강남 고급 아파트와 빌라 가운데 불이 꺼져 있는 집을 골라 베란다로 침입하기 쉬운 1층 주택에 주로 침입했는데 1, 2층 집을 연달아 털기도 했다”며 “2006년 9월 이전에도 절도를 했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한 집을 터는 데 5∼10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한 집당 최소 수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범행 건수 파악 안돼=경찰이 파악한 김 씨의 절도 물품은 현금, 수표, 귀금속, 명품 시계,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다양하다.

경찰은 “김 씨가 현금과 수천만 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많이 훔쳤다”며 “국내에서 판매되는 웬만한 명품 시계 브랜드는 한 번쯤 다 훔쳐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난신고를 토대로 경찰이 파악한 김 씨의 범죄는 49건이지만 경찰은 신고되지 않은 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도난당한 줄 몰랐다’ ‘침입의 흔적은 있었지만 막상 없어진 물품이 없는 것 같아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피해자의 직업은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체 사장, 약사, 유명 연예인 등 다양하다”고 전했다.

특히 도난 물품 중 최고가인 2.8캐럿 다이아몬드는 김 씨가 ‘훔쳤다’고 진술했지만 막상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사람이 없어 경찰이 다이아몬드의 출처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바람에 김 씨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동(棟)만 바꿔가며 계속해서 절도 행각을 벌일 수 있었다.

경찰은 김 씨가 “실제 가격의 10분의 1만 받고 장물을 팔았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추가 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김 씨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절도행각으로 호화 생활=김 씨는 훔친 돈으로 BMW 승용차를 몰며 월세 150만 원에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를 얻어 내연녀 A(32) 씨와 호화판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A 씨에게도 6000만 원 상당의 외제 승용차를 사주고 한 달에 1000만 원가량의 생활비를 준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함께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한편 김 씨는 경찰에 붙잡힐 것에 대비해 자신의 절도 행각을 생계형 범죄로 위장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김 씨는 경기 구리시에 있는 월 40만 원의 다세대 주택을 얻고 절도로 마련한 수십억 원의 돈은 가족 명의로 된 계좌에 분산시켜 놓았다.

경찰은 “김 씨는 생계형 범죄의 경우 법원에서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싼 다세대 주택을 마련하고 살림집인 것처럼 위장해 놓았다”며 “비슷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절도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김 씨가 보유하고 있던 범죄수익금에 대해 전액 몰수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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