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친정엄마 같은 한국어 선생님”

  • 입력 2008년 5월 14일 05시 48분


충북 음성서 결혼이주 외국인 여성 가르치는 박정인씨

“주∼먹 쥐고/ 손을 펴∼서/ 손뼉 치고/ 주∼먹 쥐고….”(동요 ‘주먹 쥐고’)

충북 음성군 음성읍 새마을회관. 한국어 지도사인 박정인(74) 씨의 선창에 따라 20대 초반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06년 12월 베트남에서 이곳으로 시집온 띠엔(23) 씨는 박 씨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쉽고 재미있는 동요를 통해 한글 낱말의 뜻과 쓰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띠엔 씨는 “예전에 한국어를 배울 때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박 씨는 음성 지역에 살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대모’로 통한다. 한국어 선생님인 동시에 때로는 친정엄마,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박 씨가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어 선생님이 된 것은 2000년. 처음에는 이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쳤다.

교사 출신에다 예절 및 다도 강사로 유명했던 박 씨는 청주시에 살다가 남편과 함께 1997년 음성으로 이사 왔다. 때마침 음성군은 여성상담실을 운영할 계획이었고 그 일을 박 씨가 맡게 됐다. 박 씨는 상담 시간 틈틈이 한글을 모르는 노인들을 가르쳤는데 소문이 나면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교육 및 상담 부탁이 들어온 것.

“중국에서 시집온 여성이 시댁에서 심한 구박을 받는다며 상담을 요청해 왔어요. 한국말을 잘 못하다 보니 의사소통이 안돼 그런 거였죠.”

박 씨는 이때부터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교실에서 진행하는 기존의 딱딱한 주입식 교육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방문수업 방식을 채택해 교육을 시작했다.

직접 종이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이해하기 쉽도록 교재를 만들었다. 한국 음식을 함께 만들고, 은행에 통장을 만들어 입금시키고, 한복도 가져와 입혀 보는 등 체험 중심으로 나름의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반응은 매우 좋았다. 베트남에서 2006년 3월 음성으로 시집온 찐(22) 씨는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예절과 음식, 풍습 등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해에는 당시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가 모집한 ‘방문교육 도우미’에 응시해 젊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합격했다. 전국의 방문교육도우미 가운데 박 씨가 최고령.

그는 서울에 사는 딸과 며느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이 안 입는 옷을 모아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나눠주고, 출산을 하면 며칠씩 간호를 해주기도 한다.

음성군 여성정책과 이수영 씨는 “가족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에게 박 씨는 친정엄마 이상”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의 보도가 나올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아직도 결혼이주여성들을 ‘노동력’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이 있다”며 “한국으로 시집온 이상 ‘한국의 딸이자 며느리’인 만큼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대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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