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메트로 ‘조직혁신’ 속도내나, 멈추나

  • 입력 2008년 5월 13일 02시 59분




‘2010년까지 정원 20% 2088명 감축’ 싸고 노사 대치

使 “시민 위한 조직으로” 勞 “단협 무시한 일방 추진”

직원 1만여명 국내 최대 지방공기업… 개혁 시금석 주목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노사가 ‘창의혁신 프로그램’을 두고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연내에 404명(전체의 3.9%)을 줄이고, 불성실·무능 직원 94명을 서비스지원단에 배속하는 내용의 조직 개편을 서울메트로가 지난주 단행하면서 갈등이 더 깊어졌다.

서울메트로는 “시민을 위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혁신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단체교섭 없이 이뤄진 조직 개편은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김영후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을 직위해제했다. 노조는 부당노동행위와 단체협약 위반으로 김상돈 사장을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했다.

1981년 설립된 서울메트로는 1만175명의 직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지방 공기업. 서울메트로의 개혁 여부는 다른 지방 공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의 시금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 혁신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당위

김 사장이 1월 2일 신년사에서 혁신의 필요성을 밝힌 이후 서울메트로는 ‘혁신 프로그램’의 실행에 주력하고 있다.

2010년까지 정원의 20.3%(2088명)를 감축하기로 했고,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단체협약도 바꾼다. 지난주에는 전 직원의 11.2%(1141명)를 대상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6본부 4실 48팀인 조직은 5본부 7실 31팀으로 대폭 줄였다. 직급에 따른 보직제를 폐지하고 하위 직급도 상위 직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지하철을 원래의 주인인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2006년 말 현재 서울메트로의 총 누적 운영적자는 5조2828억 원. 연간 운영적자는 1500억 원에 이른다.

km당 운영 인력은 76.2명. 국내 다른 지하철의 1.4∼2배여서 비효율적이라고 공사는 주장한다.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5243만 원으로 대기업 못지않다.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가 2006년 11월 전국 8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고객만족도에서도 최하위였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이 막대한 부담을 모두 시민이 낸 세금으로 해결한다. 경쟁력 있는 초우량 공기업으로 태어나기 위해 조직이나 기구, 시스템, 직원의 마인드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원 감축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며 분사나 지하철 9호선 등 다른 지하철 운영기관 전출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 노조, 일방적 구조조정 추진 중단해야

노조는 “사측이 추진하는 조직 개편은 노사 단체협약은 물론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지하철 안전운행마저 위협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인력 부족 현실을 외면하는 바람에 일부 승무원은 한 달에 하루 이틀 쉬고 매일 연장 근무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가를 과다 사용한 일부의 문제를 전체 직원의 도덕적 해이로 몰아가는 것은 일방적인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승무원의 과다한 병가 사용과 대체수당 수령 사례는 사측의 무리한 인력 운용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혁신 프로그램 추진도 지나치게 일방통행 식이라고 강조한다.

김 위원장은 “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일방적이라 저항할 수밖에 없다. 단체교섭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노사 협의라는 이름으로 대충 넘어가려 하는 게 문제”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 지하철에서 사고가 나면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1인 승무제 도입이나 역사 무인화, 분사 확대는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막대한 적자 혈세로 메워와

사장직 걸고 경쟁력 키울 것”

김상돈 서울메트로 사장▼

서울메트로는 노조의 힘이 세기로 유명하다. 1987년 노조 설립 후 실제 파업에 돌입한 사례만 10차례다.

2010년까지 정원 2088명을 줄이는 내용의 ‘창의 프로그램’에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상돈(사진) 서울메트로 사장은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저항이 있다고 해서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에 혁신이 필요한 이유가 뭔가.

“지난해 1월 부임했는데 세상에 이런 회사도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대한 부채와 운영 적자를 시민세금으로 갚는데 조직은 옛날 방식 그대로 움직였다. 한마디로 시민이 서울메트로의 주인이 아니었다. 혁신의 목표는 서울메트로의 경쟁력을 키워 시민을 위한 공사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노조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많은 문제점을 한꺼번에 고치려다 보니까 진통이 따른다. 이 정도의 혁신은 민간 기업에서는 벌써부터 하고 있다. 서울메트로의 혁신이 기폭제가 되면 다른 지방 공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에도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사장직을 걸고 추진하겠다.”

―많은 쟁점에서 노조와 의견이 엇갈리는데….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하지만 혁신 프로그램 자체를 백지화하라는 노조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것을 시민의 눈으로,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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