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원하신다면” 365일 내내…24시간 대기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위기의 병원들 환자모시기 ‘응급처방’

《‘의료시장 무한경쟁 시대.’ 예전에는 병원 문만 열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됐지만 다 옛날이야기다. 해마다 많은 의사가 쏟아져 나오고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병원 경영 환경 변화로 문을 닫는 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대형 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중소병원은 물론 ‘빅4’에 끼지 못한 대학병원들도 경영난을 겪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속철도(KTX) 개통 등 교통수단 발달로 서울지역 병원을 찾는 지방 환자들이 많아지면서 지방 병원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아프면 KTX 타고 서울 간다”=대전 대구의 병원들은 KTX 개통으로 서울에 환자를 빼앗겨 울상이다.

대전 서구 둔산동에 사는 김모(67·여) 씨는 올 초부터 한 달에 1번씩 서울 H병원을 찾는다. 대전지하철∼KTX∼서울지하철을 타면 병원까지 1시간 50분이면 된다.

이 같은 환자 때문에 대전 거주자가 서울 요양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횟수가 급증했다. KTX가 개통된 2003년 5만7196명에서 2005년에는 6만5524명으로, 진료비도 260억4226만 원에서 315억1267만 원으로 증가했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전 거주자의 서울행 KTX 탑승 이유는 병원 수술 및 진료가 27.5%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기껏 진료해서 병명 진단을 내리면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하소연했다.

황모(56·대구) 씨는 대구 대학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지만 수술과 통원치료는 서울에서 했다.

황 씨를 진료했던 대구의 대학병원 교수는 “위암수술은 우리 병원에서도 서울 못지않게 할 수 있는데 환자들이 막연하게 서울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가 유출되면서 대구의 간판급 대학병원의 위암 환자는 기다리는 시간이 지난해는 2주였으나 올해는 1주일로 짧아졌다.

▽의료시장 양극화=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 대형 병원은 진료를 받으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

중소병원은 정반대 상황이다. 최근 100병상 이하 중소병원이 경영난으로 휴·폐업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2005년 국내 30병상 이상 1193개 병원을 대상으로 휴·폐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70곳이 휴·폐업을 신청했다. 이 중 종합병원은 한 군데도 없었다. 휴·폐업 원인 중 50%가 경영 부진이었다.

서울지역 대학병원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화의료원은 수년째 적자상태인 이대동대문병원을 9월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키로 했다.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63년 전통의 대학병원도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365일 연중무휴 진료 선언=이화의료원 이대목동병원은 3월부터 일부 진료과의 토요일 전문의 진료를 시범 도입했다. 주말에 수술 받고 퇴원하기를 바라는 직장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병원에서는 주말에는 응급상황이 아니면 수술을 하지 않는다.

이 병원은 5월 말부터 일요일에도 각 과 전문의가 최소 한 명씩 나와 진료를 보는 ‘365일 연중무휴 진료’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대동대문병원 폐쇄 계획에 따라 전문의 60∼70명이 이대목동병원에서 진료를 보도록 했다.

이뿐 아니라 평일 진료도 오전 8시∼오후 7시로 3시간 늘린 데 이어 5월부터는 오후 진료시간을 더 늘려 기존의 ‘오전, 오후’ 2부제에서 ‘오전, 오후1, 오후2’ 3부제로 하는 야간진료를 실시할 계획이다.

▽새벽진료 인기=경희의료원 동서성인병센터는 최근 화, 금요일 오전 6시 반∼8시 새벽진료를 시작했다. 새벽진료에는 내분비내과, 가정의학과, 사상체질과 등이 참여해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 등의 성인병과 노인병을 진료한다.

경희의료원 관계자는 “평소 휴가나 조퇴 등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기 어려운 직장인이나 학생, 아침 일찍 일어나는 노인층을 겨냥한 것”이라며 “진료대기 시간이 단축되고 진료 및 검사가 원스톱으로 진행돼 환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중소병원들은 VIP 고객을 잡기 위해 새벽 예약도 마다하지 않는다. 치과 네트워크 병원으로 유명한 ‘예치과’는 VIP 고객은 밤 12시건 오전 2시건 원하는 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VIP 고객에게는 환자 1명당 1시간 정도의 진료 시간을 할당하고 스카이라운지에 VIP 전용 멤버십 와인 바와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뭉쳐야 산다=중소병원들은 한의원 치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과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치과, 고운세상피부과, 함소아한의원 등 네트워크 병원은 영리의료법인 허용에 대비해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중심으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려고 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에는 좀 더 다양한 진료과의 중소병원이 뭉쳐 종합병원의 효과를 낸다는 경영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수원 영통지구 주상복합 아파트 ‘대우월드마크’ 내에서 7월 중순 오픈하는 ‘더웰스페이스’는 중소병원이 모여 만든 ‘준종합병원’ 개념으로 준비가 한창이다. ‘네트워크 병원을 네트워킹화해 종합병원처럼 만들겠다’는 개념이다.

더웰스페이스 관계자는 “단일 진료과 중심 서비스에 한계를 느낀 동네 병원들이 한곳에 모이는 신개념의 멀티 메디컬센터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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