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선물,받을땐 즐겁지만…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데이… △△절… □□일… 달력에 빼곡한 기념일

선물비용 한국 가계지출의 7.5% <서구는 2% 미만>

한국인들은 선물을 유난히 많이 주고받는다. 이제 해외여행이 흔한 일이 되었는데도, 다녀오면 꼭 선물을 돌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 같은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가벼운 여행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해외여행뿐만이 아니다. 추석, 설날 같은 전통 명절이나 성탄절, 신정 같은 서구의 명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처럼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축일 등 사회적으로 기념하는 날이 많다. 개인적으로 생일, 백일, 돌, 회갑, 결혼 축하 선물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한국 가계 지출에서 선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7.5%를 차지해, 대개 2% 미만인 서구 가계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1997년 서울 YMCA에서는 이색적인 통계를 발표했다. 각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생활용품 개수를 조사한 결과였다. 141개 항목의 생활용품에 걸쳐 조사했는데 조사 대상이 된 100가정이 가정 당 평균 196개의 물건을 쓰지 않은 채로 보관·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하지 않는 생활용품 가운데 선물로 받은 물건은 각 가정이 평균 60개로 전체의 31%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가정에서 현재 사용하지 않는 물품 3개 가운데 1개는 선물, 사은품 등 직접 구입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선물은 받는 순간에는 즐겁다. 그러나 일단 자기의 물건이 되고 나면 짐이 되어버릴 때가 많다. 문제는 그러한 물건에는 준 사람의 성의가 담겨 있어서 함부로 처분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생활용품 가운데 선물로 받은 것의 비율이 가장 높은 물건은 △여성용 향수 △넥타이핀 △만년필 △수건 △남성용 향수 △스카프 순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습관처럼 쉽게 떠올리는 선물 품목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통업체, 기업체 등에서 홍보를 위해 대량으로 제작하는 각종 사은품 가운데도 실제로는 별로 필요하지 않는 것이 많다. 결과적으로 자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늘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선물의 가치는 주고받는 기쁨에 있다. 그 물건에 담기는 정성에 있다. 선물이 자꾸만 비싸지고 고급스러워지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선물 가운데 평생 잊지 못하는 것, 언제까지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보자. 또 내가 누군가에게 준 선물 가운데 그 사람에게 그런 추억으로 남을 만한 것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해 보자.

결혼 선물로 돌(石) 반지를 아내에게 선사한 사람이 있다. 외국 여행 중 몽블랑 기슭에서 주운 조약돌을 신부에게 건네주었더니 치과 의사인 장인이 이빨 깎는 기계로 곱게 다듬고 미술가인 장모가 주위에 테를 둘렀다. 강과 숲과 새소리가 담겨 있는 그 은은한 장식품은 매우 독특해 거리에서 뭇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가난하게 사는 어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받은 이야기가 있다. 남편은 함박눈이 가득 내린 날 아내를 공원에 데리고 가서 멀리서 몰래 뭔가를 하더니 손짓을 했다. 아내가 그리로 가 보았을 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얀 눈밭 위에 색색의 낙엽을 주워 모아 만든 글씨 ‘축 성탄’, 그리고 축하 케이크 대신 나누어 먹을 호빵 두 개였다.

우리가 받은 선물 가운데 정말 귀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아니면 줄 수 없는, 그래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 아닐까? 한 수녀님은 사형수로부터 감옥에서 비닐 빵 봉지를 이용해 손수 만든 작은 짚신을 선물 받았다. 그녀는 그것을 행운의 마스코트처럼 묵주에 달고 다니며 기도할 때마다 하늘로 간 그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손길이 닿은 선물에는 소중한 추억과 애정이 살아 숨쉰다.

우리는 선물을 너무 많이 한다.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선물이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승의 날 부모들의 선물이 부담스럽다며 학교 차원에서 하루를 휴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우리의 선물 문화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물건에 의존하지 않고 말 한 마디나 짤막한 글 한 줄로 마음을 전하는 풍토, 그것이 바로 그 문화의 수준이 아닐까.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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