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안국선,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 입력 2007년 12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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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국내 최초의 한문 소설과 한글 소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학교 국어 시간에 열심히 배우고, 그 내용까지 달달달 외우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거예요. 그런데 혹시 국내 최초의 판매 금지 작품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나요? 그것은 바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입니다.

‘금수회의록’은 1908년에 세상과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주 짧은 단편소설인데요, 혼란과 혼란을 거듭하던 구한말 시기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당시는 일제(日帝·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때였지요. 나라를 잃은 우리 국민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았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참 어지럽고 안타깝게 돌아갔을 테지요.

안국선은 자신이 지은 ‘금수회의록’, 즉 ‘짐승들이 벌인 회의’에서 남의 나라를 빼앗은 자, 그런 자에게 아첨하며 빌붙은 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린 자에 대한 신랄하고도 쓰디 쓴 말을 내뱉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고 일축해 버리지요. 안국선의 쓴소리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얼굴 붉히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특히 일제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에 일제는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판매 금지 처분’이라는 것으로 표출했지요. 자, 그럼 도대체 이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기에 그 험난한 고초를 겪었는지 금수회의소로 달려가 보겠습니다.

“땅, 땅, 땅!”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바로 금수들의 회의가 열리는 금수회의소입니다. 날짐승, 길짐승 할 것 없이 모두 참석했고, 온갖 곤충과 벌레들도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오늘 논할 주제는 세 가지. 첫 번째는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론하여 분명히 할 일’, 두 번째는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론할 일’, 세 번째는 ‘지금 세상사람 중에 인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할 일’입니다. 회의소가 북적거립니다. 모두들 한마디씩 하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양입니다. 회장의 개회 선언이 있자마자 프록코트를 입어서 전신이 새까맣고 동그란 눈이 말똥말똥한 까마귀가 연단에 올랐습니다.

“인류 사회에 효도 없어짐이 지금 세상보다 더 심함이 없도다. 사람들이 일백 행실의 근본 되는 효도를 아지 못하니 다른 것은 더 말할 것 무엇 있소. (중략) 물론 무슨 소리든지 사람이 근심 있는 때에 들으면 흉조로 듣고, 좋은 일 있을 때에 들으면 상서롭게 듣는 것이라. 길하다, 흉하다 하는 것은 듣는 저희 게 있는 것이요, 하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거늘, 사람들은 이렇듯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 책망하여 무엇하겠소.”

아, 까마귀는 효(孝)가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며 사람들이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한탄하고 있네요. 사람으로서 효를 다하지 않는 책임감을 꾸짖고, 어리석다 꾸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까마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나요? 요즘 우리 사는 세상에 효는 없는 건가요? 만약 효가 살아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는 걸까요? 잠깐 우리 사는 세상을 반추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까마귀가 연단에서 내려오자마자 냅다 일어나 앞으로 나간 동물은 여우인데요, 여우도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입니다. 기침 한 번 ‘켁’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술을 떼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당당한 하나님의 위업을 받아야 할 터인데, 외국의 세력을 빌어 의론하여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어 하려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여 제 나라를 망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못한 물건들이라 하옵네다.”

여우가 이 말을 마치자마자 손뼉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듯이 울립니다. 모인 짐승들도 여우의 말에 동의하나 봅니다. 외부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안위를 보살피는 사람들의 행태를 꾸짖고 있네요.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믿으며 그들의 권세를 마치 자신의 권세처럼 내세우는 사람들은 여우의 한마디에 얼굴이 붉어질 듯합니다.

까마귀와 여우 말고도 연단에 뛰어올라 이야기하고자 하는 금수들이 늘비하게 서 있습니다. 식견이 좁은 동물로 대변되는 개구리, 꿀과 침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벌, 창자가 없지만 줏대 하나는 반듯한 게,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 너그러운 파리, 가혹한 정치를 한다고 알려진 호랑이, 부부애의 상징 원앙 등. 여러분은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아직 회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서 달려가 폐회까지 지켜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금수보다 못한지, 나은지 반드시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이승은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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