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창용]30년 배워 20년 써먹는 나라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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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중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는 초등학생으로 공항이 만원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휴학 신청을 하러 찾아오는 대학생이 부쩍 늘었다.

투자성과 못 얻는 과잉 교육열

가정형편을 보면 넉넉지 않은 학생도 많아 놀라곤 한다. 빨리 졸업하고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별 상관을 다 한다는 표정이다. 어학실력을 높여야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기에 어렵지만 부모님이 도와주시기로 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언제부턴가 우리 대학생들은 4년 안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는다. 고시 준비나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한두 학기 휴학을 하는 일이 유행이 되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의 평균 졸업 소요 기간이 5년 2개월이라고 한다.

견문을 넓히고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 졸업을 늦춘다는데 어찌 비난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부모가 부담하는 풍조이다. 등록금과 어학연수 비용뿐 아니라 서른이 다 된 자식의 결혼 비용까지 부모가 부담하는 일이 당연시된 지 오래다.

선진국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 대학생은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스스로 조달한다. 졸업 후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 대학 진학 결정을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유명 대학에 갈 수 없다면 대학보다 취직을 선택한다. 내 돈으로 등록금을 냈으니 휴강이 생기면 당장 교수에게 항의한다.

이에 반해 부모 돈으로 대학을 다니는 우리 학생들은 휴강 공고가 나면 박수를 친다. 내 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취직에 도움도 되지 않을 대학이라도 일단 들어가고 본다.

고졸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다 보니 수준 미달 대학도 학생 모집에 어려움이 없다. 대졸자가 되어 눈이 높아졌으니 대졸 실업자가 넘쳐 나는 가운데 지방 공단에서는 대졸 근로자를 찾기 어려운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을 해서라도 교육하려는 부모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열은 이제 과잉 정도를 넘어 엄청난 비효율을 야기한다.

일례로 과잉 교육열로 인해 경제활동 시작 연령이 너무 늦어진다. 대학 졸업과 함께 군복무를 마쳐야 하기에 한국 남성은 20대 후반에야 경제활동을 시작한다. 50대 중반이면 명퇴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30년 교육해 고작 20년을 써먹는 셈이다. 경쟁국은 20년 교육해서 40년을 활용하고 있으니 어찌 경쟁이 되겠는가.

과잉 교육열은 노사 분규의 원인이기도 하다. 근로자가 볼 때 임금은 가족의 생계수단이다. 따라서 임금의 높고 낮음은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액수인가에 의해 평가된다.

동일한 임금을 받고 있더라도 서른 살이 된 자식의 교육비와 혼수까지 책임져야 하는 한국 근로자와 고등학교까지만 자식 교육을 책임지는 미국 근로자가 느끼는 임금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식 부양에 지친 한국 근로자는 낮은 임금 때문에 못살겠다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노동쟁의를 통해서라도 교육비를 마련해야 할 구조가 정착돼 있다.

과잉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학은 아이 책임으로 다니게 하자고 부모 간 담합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이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남이 하지 않을 때 내 자식만 교육하면 투자 성과가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이유로 모든 부모가 자식을 대학에 보내다 보니 투자 성과는 못 얻으면서 쓸데없는 대학생만 양산한다는 점이다.

경쟁력 없는 대학 진학은 손해

이제는 무조건 자식에게 희생한 부모가 은퇴 후 고생을 하고 있는 사례를 널리 알려 과잉 교육열을 식혀야 할 때다. 별 볼일 없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잘못된 투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좋은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을 더욱 차별화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모든 대학을 똑같이 만들라고 대학 총장을 꾸짖고 대학 교육을 보편 교육이라고 생각해 모든 국민을 대졸자로 만들려고 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교육정책이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다.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채권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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