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 입력 2007년 7월 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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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이방인’(1942년) 덕분에 카뮈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가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그는 ‘이방인’을 펴낸 다음 해에 ‘시지프 신화’라는 시론(試論)을 펴냅니다. ‘시론’은 시험 삼아 어떤 일이나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는 일을 뜻합니다. 카뮈가 이 책에서 시험 삼아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시지프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볼까 합니다.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 대답해 주세요.

○ 사람은 반드시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 사람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시간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까?

○ 미래를 위해 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까?

○ 미래는 결국 인간을 죽음으로 데리고 가므로, 온몸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죽을 때까지 ‘신(神)’에게 구원을 바라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습니까?

○ 자살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까?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에 충분히 공감합니까?

○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있습니까?

만약 위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모든 대답이 ‘예’라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알베르 카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위 질문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위 질문에 대한 카뮈의 대답 역시 모두 ‘예’입니다.

카뮈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부조리(不條理)’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부조리는 ‘도리에 맞지 않거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뜻하는데요, 이 말이 ‘카뮈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의 삶에서 의의(意義)를 발견할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를 띠게 됩니다. 의의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은 인간의 삶에서 대단한 가치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인데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의의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신이 아니라, 오직 인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완전히 해낼 수도 없지요. 게다가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서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인간은 죽음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원’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거나, 다가올 내일에 대해서 희망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미래를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결국 미래는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죽음을 선물할 테니까요. 인간의 한계를 깨달은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요?

카뮈는 말합니다.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은 부조리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인간의 삶이 부조리한 것이라 해도, 난 계속해서 ‘오직’ 인간이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내 이성을 사용해 끊임없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적이지 못한’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래나 영원에 대해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

1960년 1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는 죽을 때까지 오직 ‘현재를 열심히, 기쁘게 살아 가는 인간’이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침묵하려고 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맞서 싸우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카뮈는 어떤 인간인 것 같습니까?

여러분, 카뮈는 산꼭대기에 올려 놓으면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몇 번이고 영원히 산꼭대기로 옮겨야 하는 형벌을 받았던 시시포스의 ‘위대한 행복’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이건 무슨 뜻일까요?

황성규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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