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동원]한국이 정치파업 하는 동안

  • 입력 200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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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경쟁이 격화된 지금 노사 협상의 추세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양보교섭(concession bargaining)이다. 노조가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양보하는 대신 고용안정을 강화하는 협약을 맺는 것이다.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고, 독일의 BMW도 임금 인상 대신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협약을 10여 년 전부터 맺었다.

美獨日노조 ‘양보교섭’ 확산

지난주에는 유럽 최대 통신회사인 독일의 도이체텔레콤 노사가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일본은 전후 수십 년간 춘투를 통해 실질임금이 인상됐으나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어나고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춘투의 성격이 임금춘투에서 고용춘투로 바뀌는 경향을 보였다.

양보교섭이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의 격화이다. 극단적인 경쟁상황에 내몰린 기업은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 운영비용을 줄이고, 고용을 좀 더 유연하게 하는 방안을 찾는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이 임금과 근로조건보다는 조합원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고용안정을 택한 결과가 양보교섭이다.

양보교섭은 노동조합이 이데올로기보다는 실리를 택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들 국가의 노동조합이 투쟁력이 없어서 양보교섭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기업경쟁력이 위기에 몰리는 상황에서는 투쟁보다 양보가 조합원의 권익을 가장 효과적으로 돌보는 길이므로 전략적으로 양보교섭을 택했다.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 기업경쟁력이 되살아나고 경기가 좋아질 때 임금과 근로조건은 다시 향상될 기회가 올 것임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이런 선택이 가능하다.

산업화와 격렬한 노동운동을 먼저 경험한 이들 국가의 노동조합이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전략을 펴는 데 반해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인 행보를 보인다. 민주노총은 작년에 이라크파병 반대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등 정치적인 이슈를 내걸고 7번의 총파업을 감행했다. 가장 큰 민간노동조합인 현대자동차 노조는 작년에 비정규법안과 한미 FTA 저지를 내걸고 12차례나 파업을 벌였다. 올해 금속노조의 첫 파업 이유도 한미 FTA 체결 반대다.

정치성 파업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해당 기업과 하청업체의 근로자이며 지역경제에 생계를 의지하는 자영업자와 지역상공인이다. 문제는 이런 파업이 오랜 불경기하에서 힘겨운 일상을 지탱하는 조합원과 지역의 근로자 및 주민의 권익을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올해 노사관계의 가장 이례적인 현상은 일선 노조원과 시민단체가 노동조합의 정치성 투쟁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금속노조의 최대 지부인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GM대우 모두 금속노조의 파업지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 예정이다.

임금투쟁보다 고용안정 택해

현대자동차는 2일간만, 쌍용자동차와 GM대우는 간부 위주로 파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기아차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친 후 결정할 계획이다. 울산의 140여 개 시민 사회 경제단체도 일제히 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일반 여론과 전문가 의견도 금속노조의 정치적인 파업에 극히 부정적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권위주의 시대의 가혹한 탄압을 겪은 후에 지나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강경투쟁만을 거듭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 여론을 도외시하고 대안 없는 투쟁으로 내모는 것은 오만이고 독선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구성원의 여론을 거스르는 조직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국내 노동운동은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기업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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