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함께 한 애달픈 ‘형제의 魂’… 故 유석오 - 석환 형제의 6·25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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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 나란히…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형제 유석오, 석환 일병의 묘. 유 일병 형제는 6·25전쟁에 같은 날 참전했다 같은 날 전사했고, 유해도 함께 발견됐다. 대전=연합뉴스
현충원에 나란히…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형제 유석오, 석환 일병의 묘. 유 일병 형제는 6·25전쟁에 같은 날 참전했다 같은 날 전사했고, 유해도 함께 발견됐다. 대전=연합뉴스
전쟁의 참화에서 생사를 달리한 형제의 비극을 그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개봉)보다 더 안타까운 형제의 실제 사연이 뒤늦게 공개돼 6·25전쟁 57주년의 의미와 전쟁의 참상을 일깨우고 있다.

주인공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돼 있는 고(故) 유석오, 석환 일병. 이들 형제는 같은 날 입대해 한 부대에서 전투에 참전했다가 같은 날 전사했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유해도 함께 발견됐다.

2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이들 형제는 1950년 12월 31일 국군 8사단에 입대해 10연대에 배치됐다. 형인 유석오(당시 26세) 씨와 동생 석환(당시 17세) 씨의 군번은 각각 ‘0181005’와 ‘0181014’. 3남 1녀 중 셋째였던 석환 씨가 맏형인 석오 씨를 무척 따랐다는 유족들의 얘기로 미뤄 볼 때 석환 씨는 군번을 받는 순간에도 형과 바싹 붙어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16세였던 이들 형제의 여동생 석연(73·경기 이천시) 씨는 “막내 오빠는 군에 갈 나이가 안 됐지만 큰오빠와 함께 징집돼 입대했다”며 “막내 오빠가 큰오빠를 항상 의지하고 따라다닌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형인 진태가 6·25전쟁이 터지자 국군에 징집된 동생 진석을 되찾기 위해 입영열차에 올랐다 함께 징집된 뒤 각종 전투에 참가해 동생을 지키려다 끝내 숨진다는 게 줄거리다.

하지만 유 일병 형제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춘계대공세 때 강원 횡성지구에서 전투를 치른 뒤 같은 해 4월 6일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참전했다가 적탄에 맞아 함께 짧은 생애를 마쳤다. 형제의 유해는 전투가 벌어진 전남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지역에 매장됐다.

육군 전사(戰史)에 따르면 당시 대구에 주둔했던 육군 8사단 3대대 10중대원들은 화순 지역의 화학산과 밀봉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1951년 4월 화순읍 이십곡리 일대로 파견됐다.

하지만 화순에 도착한 이튿날 새벽 빨치산의 기습공격을 받고 백병전을 벌이다 26명이 전사해 주민들이 전사자들을 매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사 당시 유석오 씨는 만삭인 아내와 세 살된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도 고된 피란생활 끝에 숨졌다.

여동생 석연 씨는 “아들 2명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는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눈물로 지새우다 10여 년 전에 세상을 뜨셨고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더 일찍 가셨다”고 말했다.

육군은 2001년 5월 유해발굴 작업 과정에서 형제의 유해를 발견해 유전자(DNA) 조사를 거쳐 신원과 유족을 확인한 뒤 2002년 4월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이들 형제의 묘비는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게 세워져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6·25사변 × 6·25전쟁 ○… 교육부 한가지 용어 권고

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지 57년째 되는 날이다. ‘6·25전쟁’, ‘6·25사변’, ‘한국전쟁’ 가운데 어떤 용어가 맞는 표현일까.

실생활에서는 이들 용어가 두루 쓰이고 있다. ‘6·25사변일’이란 용어를 쓰는 달력도 적지 않다. 국립국어원은 6·25전쟁과 한국전쟁을 널리 쓰이는 역사 전문어로 소개하고 있다.

국사와 근현대사 교과서는 6·25전쟁만을 사용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4년 4월 교과서 편수용어를 공개하면서 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 벌어진 전쟁을 ‘6·25전쟁’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교과서 편수용어는 교육부가 학회나 대학 등의 연구기관에 의뢰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

당시 교육부는 “한국전쟁은 제3국의 관점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국사교과서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정희창 학예연구관은 “다양한 용어가 혼용되는 것보다는 정해진 한 가지 용어가 안정적으로 쓰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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