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병원지도]암 조기검진 열풍타고 병리과 3배 늘어

  • 입력 2007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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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안과 의사가 눈 검사 기기를 통해 환자의 눈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 안과 의사가 눈 검사 기기를 통해 환자의 눈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2002∼2006년 진료과목별 개원의 변화

2002년과 2006년의 개업 의사 수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개업하기가 힘들 것이라 여겨졌던 이른바 ‘비인기 과목’의 개업이 크게 늘어났으며 연중 불황을 모르는 과목이 비인기과로 전락한 점이 두드러진다. 불과 5년이란 시간 차이에서 의료산업의 현주소가 드러난 셈이다.

▽비인기과에서 인기과로=2002년, 2006년을 비교해 보면 병리과와 마취통증의학과, 흉부외과 등 3개 과목의 개원의가 크게 늘었다.

이 중 병리과를 주목할 만하다. 이 과는 일반 환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주요 고객이 의사들이다. 주로 일반병원 의사의 의뢰를 받아 위암, 간암, 자궁경부암 등 암 진단 자료(생체조직 등)를 토대로 암 여부를 진단한다.

병리과는 2002년 6곳에서 2006년 16곳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마다 조기암 검진 사업을 벌이면서 자궁암 위암 등의 조직세포 진단 수요가 늘었다. 늘어난 수요와 조기진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개업을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전국 16곳 가운데 4곳이 대구 수성구에 몰려 있다. 경북대 의대 출신 의사들이 주로 개업하고 있다. 병리과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병리학회 김한겸 이사장(고대 구로병원)은 “2002년에는 병리학 전문의 배출 인원이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40명으로 늘어났다”면서 “소화기 내시경 검사를 받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병리과의 의료 환경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마취통증 의학과는 2002년 387곳에서 2006년 570곳으로 1.5배 가까이 늘었다. 통증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이 과는 진료 범위가 넓어지면서 개업 붐이 일고 있다. 2006년 서울 강남구(13곳), 대구 수성구(10곳), 충남 천안시(9곳), 전북 전주시 완산구(9곳) 등에 마취통증의학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마취통증 전문의는 “과거에는 의료계가 질환을 중심으로 생각했지만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당연히 참는 것으로 여겼던 작은 통증이라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면서 “각종 주사나 물리치료 요법 등 개발되고 있어 진료하는 질환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선진국인 미국에서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돈을 잘 버는 의사로 알려져 있다.

흉부외과는 2002년 22곳에서 2006년 41곳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과거 흉부외과 전문의는 대학병원에 취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정맥류 또는 다한증 등의 질환을 간단한 시술로 고칠 수 있는 ‘틈새시장’이 열리면서 많이 개업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연세흉부외과 김재영 원장은 “레이저, 내시경 기술이 발달해 부분 마취로도 간단히 시술할 수 있어 개업이 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협업 수술이 많아 주로 대학병원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흉부외과를 개업하려면 장비를 갖추느라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그만큼 경영 위험이 크기 때문에 주로 전문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명성을 쌓은 의사들이 개업하는 게 특징이다.

▽안과는 포화, 외과는 약진=라식 수술 붐을 타고 개업의가 크게 늘어난 안과는 2002년, 2006년 모두 서울 강남(60곳, 61곳) 서초(31곳, 30곳), 송파(26곳, 24곳) 등에 많다. 안과는 이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2002년부터 포화 상태에 접어들어 더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전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누네병원 안과 유용성 원장은 “안과는 라식, 라섹 기기, 검사기기 등으로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지만 최근 진료비가 낮아지고 있어 임차료가 비싼 강남에서 개업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주로 신도시나 서울 노원구 등 인구가 많은 지역에 개업하는 의사가 많다”고 말했다.

외과는 이른바 의료계의 3D 업종으로 불려 한때 지원자가 줄고 개업의도 적었지만 최근 틈새시장을 노린 개업이 늘고 있는 추세다. 실제 2002년 서울 강남구의 외과 의원은 10곳이었으나 2006년에는 18곳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외과가 유방 클리닉, 치질전문 등 특화된 분야를 노리고 개업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담서울여성외과 권오중 원장은 “2002년부터 외과가 유방과 치질 등 특화된 분야를 전공해 개업하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요즘 유방암과 대장암이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도 공급이 계속 늘 전망”이라고 말했다.

▽소아과 산부인과 줄었다=인구가 줄면서 개업의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과목은 소아과와 산부인과다. 소아과의 경우 2002년 2232곳에서 2006년 2198로 34곳이, 산부인과의 경우는 2002년 1938곳에서 2006년엔 1818곳으로 무려 120곳이 줄어들었다.

서울지역에서는 2002년 536곳이 있었지만 2006년에는 497곳으로 39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매년 소아과와 산부인과에서 배출되는 전문의가 각각 200여 명 선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의사가 개업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협회에서 2006년 11월 전국 산부인과를 대상으로 수련의(레지던트)가 있는 병원 109곳을 조사한 결과 산부인과 1년차 전공의 수가 과거의 절반에 불과해 앞으로도 산부인과 개업의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 협의회 최안나 홍보이사는 “저수가에 의료사고 위험이 많아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로 변하고 있다”면서 “요즘 비만 피부 요실금 클리닉 등으로 진료 분야를 바꾸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2006년 소아과가 가장 많은 시군구는 서울 노원구(39곳), 서울 송파구(36곳), 서울 관악구(35곳) 등의 순으로 주로 아파트 밀집 지역과 관련이 있다. 소아과는 주로 아파트 대단지를 끼고 개업하지만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내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등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다 보니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서울시 소아과개원의협의회 정해익 부회장은 “4, 5월이 되면 소아과 환자들이 많이 생기는 시기인데도 개원의가 줄었다”면서 “동료나 후배 의사들 가운데 폐업하고 제약회사에 취직한 월급쟁이 의사도 많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 한국의 대형병원 CEO는 누구

개업의가 자영업자라면 고용의는 월급쟁이다. 월급쟁이 의사의 최고봉은 병원장이다. 국내 대형병원(500병상 이상) 최고경영자는 누구일까.

본보가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병원 가운데 초대원장부터 기록을 갖추고 있는 17곳의 병원장 195명을 조사한 결과 서울대 출신 외과 의사가 가장 많았다.

출신 대학이 밝혀진 172명 가운데 서울대가 78명(45%)으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연세대 31명(18%), 고려대 16명(9.3%), 경북대 7명, 가톨릭대 6명, 부산대 5명, 경희대 4명, 기타 23명(대학별 3명 이하 기준) 등의 순이었다.

을지대병원(1981년 개원)의 역대 병원장 10명, 단국대병원(1994년 개원)의 역대 병원장 9명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 경희대병원과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 등은 초기에는 서울대 출신이 병원장을 맡았지만 이후 모교 출신으로 바뀌었다.

아주대병원(1994년 개원)은 6대에 걸쳐 연세대 출신이 병원장을 맡았다.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의 경우 지방대 출신 병원장이 많았다. 7명의 역대 병원장 가운데 연세대가 3명, 경북대가 2명, 부산대가 2명이었다.

출신 고교가 밝혀진 79명 가운데 경기고(13명)와 서울고(11명), 경복고(7명) 출신이 각각 1∼3위를 차지했다.

전공별로 살펴보면 일반·정형·성형 등 외과 의사들이 65명(3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내과 35명, 소아과 14명, 산부인과 11명, 이비인후과 9명, 피부과 6명, 정신과 5명, 기타 27명(전공별 4명 이하 기준) 등의 순이었다.

내과 및 외과의 비중이 58%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김양균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외과의 경우 수술이 많아 빠른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조직 결속력이 강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병원 진료 과목이 내과와 외과를 중심으로 나뉘어 있어 두 개의 과에서 병원장을 맡은 사례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4명)과 삼성서울병원(3명)은 초대에서 현재 병원장까지 모두 외과와 내과 출신이었다.

하지만 병원장의 전공은 전공의 세분화와 맞물려 피부과, 비뇨기과, 안과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장과 순천향대 천안병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다.

병원장들이 경영학석사(MBA) 등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영동세브란스병원장을 거쳐 연세대 의료원장에 오른 지훈상 원장은 고려대와 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50대 중반 이전의 젊은 중소 병원장의 경우 대학원에서 의료경영을 따로 전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병원장들의 첫 취임 연령은 50대 중반(55.3세)이었다. 병원장은 병원 내 요직을 거친 의료계의 ‘어른’이 맡았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초대부터 현재까지 병원장 4명이 모두 60대에 취임했다. 소의영 아주대병원장(취임 당시 45세)이 유일한 40대 병원장이다.

병원장의 평균 재직기간은 35.6개월로 3년에 조금 못 미쳤다. 설립 초기에는 15∼20년간 장기 재임하는 병원장도 있었으나 2∼4년의 임기제 병원장이 점차 늘고 있다.

출신 지역이 파악된 병원장 127명 가운데 51명(40%)이 서울 출신이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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