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에게 술 한잔 따르라 성희롱 아니다"

  • 입력 2007년 6월 15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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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술을 따르도록 한 발언이 객관적으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한 것이 아니라면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1995년 성희롱의 개념이 법률(여성기본법)에 처음 등장한 이후 성희롱 여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한 첫 대법원 판결로 향후 성희롱 행위인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지방의 한 초등학교 교감으로 갓 부임한 김모 씨는 2002년 9월 교장과 최모 씨 등 여교사 3명, 남자 교사 3명과 함께 회식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남 교사 1명이 먼저 교장에게 술을 따른 다음 교장이 여 교사 3명의 소주잔에 맥주를 따랐고 나머지는 소주를 따른 다음 건배를 제의하고 술을 마셨다.

잠시 후 김씨는 여교사들에게 "잔 비우고 교장선생님께 한잔씩 따라 드리세요"라고 말했으나 남자 교사들만 술을 권하고 여자 교사들은 별 반응이 없자 "여선생님들 빨리 잔들 비우고 교장선생님께 한잔 따라드리지 않고"라고 재차 말했다.

이에 여교사 2명은 교장에게 술을 권했으나 최씨는 거부의사를 표시하다가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교장으로부터 술을 한잔 더 받은 후 맥주를 따랐다.

최 교사는 그러나 교감이 교장에게 술을 따르도록 강요해 성적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꼈다며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진정했고, 여성부는 김씨 행위를 성희롱으로 보고 시정조치를 권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교감인 김씨가 성희롱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국가인권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씨의 발언은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상대방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가 아닌 이상 자신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성희롱이 성립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당시 정황에 비춰보면 김씨가 성적 의도를 갖고 술을 따르도록 했다기보다 직장 상사로부터 받은 술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말했고 여교사 3명중 2명이 성적인 굴욕감ㆍ혐오감을 느끼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김씨 언행이 우리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가해자가 스스로 성적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을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위라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성희롱인지 여부에 관한 기준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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