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파행에 관한 한 국민은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는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 당국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무엇이고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원론적으로 따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전통사회에서나, 전체주의적 동원사회가 아닌 현대의 민주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책임의 궁극적 주체는 국민 개개인이다. ‘의무교육’이란 말은 부모의 과실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할 염려가 있는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지, 개인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생존경쟁을 위해 사람들은 누구나 다 배우려 하고 능력이 미치는 한 최고 교육을 자녀들에게 시키려 한다.
평준화 교육파행 이젠 넌더리
국가나 지역 공동체는 교육에 대한 공통된 욕구를 수렴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육부나 교육위원회를 두고 때로는 학교를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는가 하는 것은 결국 교육 수요자들의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교육부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 관리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핵심 교육과정으로 설정하여 학교 설립 인허가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가 없다고, 또는 공식 교과과정을 벗어난다고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또 그것을 막을 권리도 능력도 교육부에는 없다.
바로 이러한 원리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우리 교육부는 교육철학이나 소명의식보다는 ‘고교 평준화’라고 하는 정치적 명분 또는 편의에 따라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피교육자들의 수요에 아랑곳없이 능력 밖의 권한을 무책임하게 휘둘러 왔다. 개별화된 양질의 교육을 갈망하는 교육 수요자 측은 결국 무언의 반란을 일으키며 사교육 시장이나 해외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경제 역량은 엄청나게 커졌는데도 교육부는 빈껍데기만 남은 고교 평준화의 틀을 30년 넘게 고수하며 ‘3불’이니 무엇이니 하며 원칙도 실익도 없는 이상한 규제들을 심지어 대학에까지 남발해 왔다. 나라가 부강해지면 교육의 자립도가 높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백년대계를 남의 손에 맡겨 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교육의 해외 의존도가 하급 학교에서까지 높아만 가는 끔찍한 일이 가속돼 왔다. 교육정책의 실패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공교육이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게 된 배경에는 교육 당국의 무능과 무책임뿐 아니라 제도가 아무리 부당해도 내 자녀, 내 직업적 입지에 유리하기만 하면 무조건 수용한 학부모, 교원단체, 교육전문가, 각종 입시 관련 업체들의 부도덕한 이기주의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결국 국민 모두가 공모자이고 피해자가 된 셈이다.
교육받을 권리 국민에 돌려줄 때
교육에서도 경쟁은 빼놓을 수 없다. 다만 그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어야 하며, 지는 법을 배우는 것도 이기는 법을 배우는 것만큼 교육에서는 중요하다. 머리도 가정환경도 좋고 열심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똑같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이란 없다. 하지만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의 딸이었어도 기숙사비까지 대주는 장학금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좋고 비싸다는 대학에 다니는 특전을 누려 본 나는 믿는다. 학비가 비싸더라도 교육 내용이 충실한 좋은 사립학교가 우리나라에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가난하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이 치열하지만 공정하게 벌이는 개인별 경쟁과 능력 개발을 통해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고…. 교육부는 이제 능력껏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모두 국민에게 돌려줄 때가 됐다.
이인호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석좌교수 poso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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